며칠 전 경기도 화성의 동탄 신도시에서 성공한 중학교 동창생이 친구 셋을 초대하여 다녀왔다. 

동탄은 경기도 화성시 동쪽에 위치해 있고 동탄1신도시와 동탄2신도시의 개발로 인구는 40만 명 정도에 이르고 30대의 젊은 부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거리에는 젊음이 넘쳐나 보였다. 

친구는 안 해본일 없이 인생의 밑바닥 생활을 몸소 체험한 의지의 한국인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무언가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면서 한탄스런 말을 마구 쏟아냈다. 

친구의 얘기는 70세가 가까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못했고 자식도 없으며 가수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노력을 하였지만 가수가 되지도 못했고, 국회의원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으로 치부했다. 

건물의 추정가액은 2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본인의 입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혈혈단신(孑孑單身)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재산을 물려주느냐가 또 하나의 고민거리로 등장한 것이다. 

우리처럼 소시민들은 그의 재산에 놀랍기만 하지만 돈이 많은 사람들은 사후 유산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 중의 고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중에서 그는 독일 태생의 유대계 이론물리학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고 아인슈타인의 명언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 2동은 아인슈타인을 흠모해서 ‘아인슈타인 타워’, ‘아인슈타인 프라자’로 명명했다.

필자는 친구에게 아인슈타인이 집에서 일어난 인간적인 면모의 일화를 들려줬다. 

아인슈타인은 진짜로 달걀을 좋아하는 지식인으로 거의 매일 아침 계란프라이 또는 스크램블드 에그(휘저어 부친 계란 프라이)를 2개를 먹었으며 버섯도 하루에 세 번씩 먹을 만큼 즐겼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스테이크는 바짝 구워먹는 것을 좋아했으며 절반쯤 익힌 것이 핏기가 있으면 “나는 호랑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커피는 카페인이 없는 것을 좋아했고 홍차도 즐겼으며 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파이프 담배를 달고 살았다. 

아인슈타인의 상징과도 같은 부스스한 머리 스타일은 두 번째 부인 엘자뢰벤탈이 직접 잘라준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늘 돈이 부족했고 부인은 구두쇠여서 아인슈타인이 구멍이 난 신발을 물이 새더라도 신고 다녔다. 

아인슈타인의 상상력을 좋아한 친구는 200억 원의 자산가이지만 아인슈타인은 배고픈 지식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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