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관심있는 척
상생협력자금 저조
‘희생의 대가’에도
귀찮은 존재로 내몰려

[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인간의 이성은 합리적이었으나 그 합리성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위험을 발생시켰다. ‘합리적 이성’에 기반한 산업사회가 놀랍게도 ‘위험사회’로 변한 것이다. 현대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한다. 
예를 들면 축산업자들은 “어떻게 하면 최소의 투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성공했다. 
영국 대처수상 시절 양들이 전염병으로 죽자, 축산업자들은 그 양고기를 갈아 만든 값싼 사료를 사용해 양질의 단백질을 엄청나게 많이 공급할 수 있는 슈퍼소를 만들었다. 하지만 성공으로 끝날 것 같았던 그들의 노력은 상상도 못했던 문제를 발생시켰다. 
갑자기 소들이 쓰러지고, 또 그 소고기를 먹은 사람들도 쓰러지고 그들의 뇌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바로 ‘BSE(일명 광우병)’의 등장이다.  
그는 위험사회를 5가지로 정의했다. 그 중 하나가 ‘사회적 불평등의 개인화’다.
현대사회에서 노동자는 작업 특성과 능력에 따라 구분되며, 연봉제 등으로 같은 노동자라도 입장이 다르다. 이제 사회계급적 속성은 약화되고, 불평등은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가 됐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개인주의화 되고, 과거 삶의 중심에 있던 가족‧지역‧계급 등의 공동체의 순기능은 약화된다. 파편화된 개인은 현대사회의 위험에 흩어져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오늘날 농업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농업국가에서 공업화되면서 국가 경제의 틀에서 배제된 지 오래다. 그러한 이유로 분배의 테이블에서 정당한 요구는 묵살되고 외면당하면서 의붓자식 취급이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 단적인 예다. 이 기금은 2015년 FTA 발효를 계기로 도농격차를 완화시키고자 국회와 정부가 사회통합 차원에서 민간기업, 공기업 등의 참여로 기금을 조성하는데 합의했다.
기금 도입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설치, 조성, 용도 등을 규정하는 3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2017년 1월 17일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지난 7년 간의 실적을 보면 실망 그 자체다. 
2017부터 10년 간 매년 1000억 원씩 1조원을 조성하기로 한 당초의 계획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마지못해 출연된 돈만 겨우 2147억원에 불과했으며, 그중 민간기업 모금액은 37%뿐이었다. 목표액에 한참 모자란 액수도 대부분이 공공기관의 기금액 조성으로 채워져 ‘상생 협력’이 무색할 지경이다. 
모금 실적을 놓고 보면 더 초라하다. 2019년 이후 매년 증가하고 있던 농어촌상생협력기금액도 지난해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지난 10월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와 관련 윤준병의원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225억9300만원, 2020년 375억9500만원(전년 대비 66.4% 증가), 2021년 455억2500만원(전년대비 21.1% 증가) 등 매년 증가했지만 2022년 조성액은 354억1700만원으로 전년대비 22.2%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뭘까? 관심이 없다는 의미다. 기금이 논의될 당시에도 나온 이야기지만 FTA 이행으로 무슨 이익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증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출 부진이 좋은 핑계거리가 됐다. 
윤 의원은 민간부분에서 기금을 조성하는 데 미온적인 이유 중 하나로 기금의 구체적인 활용 방안이 공유되지 않고, 정부가 민간기업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유인기제를 제대로 발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법인세 인하 등 부자감세 혜택은 유인기제가 아니었던가?
세계 경제 10위를 들락거리며 풍요로움을 즐기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그냥 생겨난 것도 아니며, 기업가의 혁명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천연 자원의 부재 속에 오로지 인적 자원을 활용한 그 이면에는 오롯이 노동자와 농민의 땀과 눈물로 이뤄진 것임을 인지하고, 그래서 이제는 그들의 희생을 보상해야 함을 정책의 제일 순위로 두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수출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음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전 세계와의 자유무역협정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도, 그로 인해 희생을 당하는 농민의 입장에서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의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무언가 사줘야 하는 데 그때마다 개방의 희생자는 농업이다. 풍년이 들면 가격 하락으로, 흉년 때는 무차별 수입으로 또 제값을 받지 못하는 농민의 입장에선 생업인 농업이 참기 힘든 일이다.
농민에게 모든 국민의 주식을 생산하는 엄중한 직업이 ‘지긋 지긋한’ 굴레로 여겨지고, 마치 전 국민을 위한 노예로 대접받는 것은 상식적이고 건전한 사회가 결코 아니다.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 희생을 강요당하고, 그 강요로부터 아프다고 소리쳐도 ‘떼쓰기’로, 또는 ‘귀찮음’으로 내몰리는 사회는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가장 기본적으로 안정되어야 할 산업을 모르쇠하고 홀대하고 핍박하는, 얼마나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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