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구장에서의 대패
질책보다 기립박수
감독과 주장의 철학
팬들과 선수 한 마음

[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홈 구장 6만여 관중 앞에서 상대팀에게 대패를 당한 팀이, 대패시킨 상대팀보다 더 많은 응원을 받는 일은 스포츠의 경기에서 흔한 일이 아니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7일 새벽에 열린 토트넘과 첼시의 프리미어 리그 11라운드 경기가 바로 그랬다.
10경기 무패를 기록했던 토트넘은 첼시를 맞아 아주 감동적인 경기를 벌였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 레전드들은 “40년 내가 본 축구 경기 중 최고의 경기 중 하나였다”거나 “감독도 미치고 팀도 미친 경기였다”고 감탄했다. 
경기를 지켜본 팬들의 반응도 4대1의 경기결과에도 불구하고 지켜보는 내내 가슴을 뜨겁게 달군 핵폭발급의 경기였다는 평가다. 
어느 팬은 “경기를 보면서 왜 가슴이 절여오는지… 울컥거리면서 경기를 지켜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고, 또 다른 팬은 “어떻게든 이기려고 달려든 그들의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고 칭찬했다. 그에 달린 인터넷 댓글도 칭찬일색이었다.  
도대체 경기가 어땠길래 그런 평가들이 줄을 이었을까?
그날 토트넘은 전반 초반 경기를 주도했다. 그리고 중반 그동안 무패의 주역이었던 수비수가 과도한 태클로 퇴장을 당했다. 그 하나의 사건이 나비효과를 불러 또 다른 수비수가 부상을 당해 경기장에서 들려 나갔다. 
토트넘의 불행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공격의 핵심 중 한 명도 부상으로 빠졌다. 이후 10대 11로 힘겹게 싸우던 토트넘 후반 초반 또 한 명의 수비수가 퇴장을 당하면서 무패 행진의 주역이었던 선수들이 차례로 경기장을 벗어났다. 그 자리를 선발이 아닌 교체 선수들이 매웠다. 
심판의 편파적 판정으로 토트넘은 9대 12의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추가 시간까지 전후반 합쳐 기록적으로 20분이 넘었다. 이날 111분 경기에 끝까지 남아 있었던 선발 선수는 손흥민을 비롯 단 3명뿐이었다. 
이제 토트넘에는 뒤로 물러서서 어떻게든 동점으로 무승부를 택할지, 다음 경기를 대비해 최소 실점을 목표로 적당히 시간을 보낼지를 선택해야 하는 결정의 시간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토트넘은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    
이날 토트넘의 결정은 지난 시즌까지 수비전술로 일관하다 역습해 승부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 수비축구를 하고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팬들은 실망했었다. 
앤지 포스테코글루 현 감독은 올 시즌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축구 철학을 토트넘에 심었다. 바로 ‘공격 축구’였다. 어떤 난관이 있어도 그것을 팀웍으로 이겨내고 상대방의 골문을 두드리고 승리한다는 것이다. 
앞서 10경기 내내 그래 왔고, 그렇게 지지 않는 결과를 가져와 팬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던 것이다.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라인을 내리고 수비 대형을 갖춰 무승부 전략을 갈 것으로 내다봤다. 그것도 운이 좋은 때였을테지만. 
하지만 전문가나 해설자나 팬들이나 눈을 의심하는 일이 벌어졌다. 라인을 중앙선까지 끌어올리는 극단적인 공격전술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팀원이 부족한 만큼 뒷공간을 비우고 공간을 좁히므로써 그곳에서 11명과 9명이 싸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중앙선 아래는 비카리오라는 골키퍼 한 명만 남아 있었다. 
7일 새벽 토트넘은 그렇게 첼시와 싸웠다. 달리고 또 달리고 부딪치고 또 부딪혀 가며 첼시의 골문을 위협했다. 뒤로 물러날 것으로 예상했던 첼시 선수들은 막무가내로 부딪쳐 오는 토트넘 선수들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이 같은 전술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전방 첼시 수비수들에 둘러쌓여 있는 손흥민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홀로 6~8명의 사이를 끝까지 휘젖고 다니던 손흥민의 피니셔 능력을 믿었다고 한다. 
이날 텅 빈 뒷공간을 파고드는 첼시 공격수의 슛을 어떻게든 막아내는 선방을 보이던 골키퍼 비카리오는 자신의 얼굴로까지 슛을 막아내는 불가능에 가까운 투혼을 보였다.
후반 종료 2분 전 어떻게든 손흥민에게 골을 전달하려던 선수들의 악전고투 속에서 손흥민에게 공이 전달됐고, 손흥민은 첼시 선수 6명 사이를 뚫고 회심의 한 방을 날렸지만 골키퍼의 손 끝에 걸리며 골대를 벗어났다. 그때까지 동점의 희망은 날아갔고 지친 선수들은 2골을 더 헌납했다. 
이날 6만여 토트넘 관중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대패한 선수들을 향해 기립박수를 쳤다. 그들의 결연한 도전에 감동을 받으면서.
경기가 끝난 후 토트넘의 골키퍼 비카리오에게 “왜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 죽을 듯 뛰었느냐”고 기자들이 물었다. 그는 말했다. “저 공격의 선봉에서 6~8명의 상대팀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이기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우리의 주장을 보면서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골을 막으면 우리의 캡틴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토트넘이 무패행진을 하고 있을 때에도 리그 우승을 반신반의했던 전문가들은 이 경기 하나로 그들은 우승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물러서지 않는 전술을 처음부터 일관되게 펼치는 감독과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려는 주장의 투지와 팀원들의 믿음 그리고 그것을 응원하는 팬이 비로소 하나로 뭉쳤기 때문이다. 그것이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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