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23년 전 조선(朝鮮)시대 정조(正祖: 1752~1800년)는 조선의 제 22대 임금으로 48세로 승하(昇遐:돌아가심의 높인 말) 하셨다. 
조선왕조의 기틀을 구축한 인물로 11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잃는 등 아픔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25살에 왕위에 오른 후에는 문민정치에 힘써 세종대왕 다음가는 성군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정조대왕은 즉위 후 나라와 백성을 위한 수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로 기록돼 있다. 
즉위 후에 규장각을 둬 국왕직속의 학술 및 정책 연구에 힘을 쏟았고, 왕권강화에 최선을 다했다. 활자를 개량해 인쇄술을 발전시킴은 물론, 직접 방대한 집필서적도 남겼다.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을 목표로 하는 실학을 중시하고, 백성의 부담을 덜기 위해 징세(徵稅) 법을 개혁하기도 했다. 
정조(正祖)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분 좋은 일이 세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첫 번째가 “고전의 깊은 세계를 음미하고, 두 번째는 연구를 통해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밝혀내며, 세 번째는 세계의 비밀을 드러내 보이는 문장을 짓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독서와 연구 그리고 글쓰기가 바로 이 우주 안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통쾌한 일로 생각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여드레 동안 뒤주에서 갇혀죽은 사건이 어린나이에 큰 상처로 남아 있던 정조(正祖)는 이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그는 언제나 정사(政事)를 마친 후 정신통일을 위해 춘당대(春塘臺 창경궁 안에 있는 대(臺)로 예전에 과거를 보던 장소)에 나가 활을 쏘았다고 한다. 
궁술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고 자아를 완성시켜 나가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그는 마음을 다스려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道)다’라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가질 수 있었다. 평상심은 그 분별이 끊겨 꾸밈도 없고, 옳음과 그름도 없고, 취함과 버림도 없고, 연속과 단절도 없고, 속됨과 성스러움도 없는 상태이다. 
걸을 때는 걷기만 하고, 머물 때는 그냥 머물기만 하고, 앉을 때는 앉기만 하고, 누울 때는 눕기만 하는 게 평상심이며 이것이 도(道)라고 본 것이다. 
정조(正祖)는 국왕으로서도 국민이 독서하는 습관을 갖도록 만들 수는 없다고 하였다. 또한 역대 왕 중에서 화를 가장 적게 낸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월 평균 화낸 숫자를 보면 태종이 0.46회, 성군이라 불리 우는 세종이 0.06회, 정조는 0.03회로 지극히 절제하는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 
그가 말한 세 가지 기분 좋은 일에 화 안내는 일도 하나 추가되면 더 멋진 일이 아닐까, 어쩌면 그것이 건강의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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