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두 주먹, 숱한 고비 10년 집산지 리더로

물려받은 농장·땅 하나 없이
그것도 낯설은 타지서 시작
대출로 마련한 기반 AI로 폭삭
카드 돌려막기 등으로 연명

철저한 방역이 돌파구 판단
ICT 기술 도입 노동력 절감
자동화 되자 출입통제 가능
경영합리화로 대출금 완납

농수산대 출신 동기·후배들
경험·노하우 상호 교류하며
‘행복한 삶’ 목표 의기투합
산업 발전 다양한 전략 모색

최성환 대표.  

 

[축산경제신문 이국열 기자] 최성환 대표(32세)는 후계농이 아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을 농장이나 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으지도 못했다. 게다가 농장이 위치한 전남 영암은 낯선 타향이다. 말 그대로 젊음과 두 주먹이 전부였다. 덧붙이자면 오리 산업이 처한 각박한 현실도 몰랐다.

설사 알았다고 해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이상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다. 지난 10년간 오리농장을 운영하며 겪은 숱한 고비와 어려움은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 사육을 포기할 순 없었다. 오리를 사육하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고, 소중한 인연들을 맺게 해 준 것도 오리였다. 무엇보다 오리를 사육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이립(而立). 뜻을 세우는 나이다. 10년의 세월이 혈기왕성한 20대 청년을 이제는 완숙한 농부로 변모시켰다. 국내 오리 산업 최대 집산지인 나주·영암지역을 이끌어나갈 청년농업인 최성환 대표를 만났다. 

 

최성환 대표가 새끼오리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 홀로서기, 위태로웠던 시작

2억 원. 최 대표가 농수산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출받은 금액이다.  

3년 거치, 7년 상환. 전남 영암에 땅을 매입하고, 축사 6동에 새끼오리 8000마리를 입식했다.  

2013년부터 ‘성환농장’ 명패를 달고 농업인으로 첫 걸음을 시작했다. 뿌리를 내리기로 마음먹었고, 열심히 준비했다. 자신도 있었다. 적어도 2014년이 오기 전까진 말이다. 

2014년 전북 고창에서 시작된 AI는 제주까지 발생하며 전국으로 확산됐고, 이동제한이 발동되면서 모든게 막히기 시작했다. 

최성환 대표는 “오리 사육을 못하니 수입이 끊겼다. 급전이 필요해 은행에 문의했지만 단 한군데도 대출해주는 곳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카드론, 카드돌려막기 등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했다. 겨우 23살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대출금 이자도 연체하게 됐고, 부모와 친척에게 손을 빌리며 겨우 버티는 지경이었다.

 

# 설상가상, 겨울철 사육제한

한바탕 폭풍은 지나갔지만 살얼음판이다. 언제 또 AI가 터질지 모르는데다, 2016년부터는 원리금 균등상환이다. 1년에 4000만 원 가까이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했다. 

게다가 2017년부터 겨울철 사육제한이 처음으로 시행돼 4개월간 입식을 못했다. 4개월간 도닦는다는 심정으로 빈 농장을 방역하며 심신을 다스렸다. 그러는 동안 빚은 쌓여만 갔다.

오리농가들은 겨울철 사육제한으로 최소 5~6개월, 심지어 8~10개월 동안 농장 운영을 못해 폐업하는 농가가 늘었고, 신용불량자가 생겨났다. 오리 산업이 급속도로 쇠퇴하는 계기가 됐다. 오리농가들은 겨울철 사육제한 기간에 살길을 찾아야 했고, 최 대표도 겨울이면 일당으로 막노동을 했다. 

 

새끼오리에게 직접 사료를 먹이고 있는 최성환 대표.   

 

# 철저한 방역이 돌파구

폐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아직 상환 못한 대출금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최성환 대표는 철저한 방역을 돌파구라 판단했다. 새끼오리 입추 전과 분동 전 전체 축사를 소독하고, 출하 후에는 물청소를 하며 청결한 사육환경 마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최 대표가 가장 신경 쓴 것은 바닥관리다. 오리농가 바닥관리는 필수적이다. 또 노동력이 가장 많이 투입돼 이 과정에서 AI 등 호흡기질환 발생 위험성이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축산 ICT를 활용한 ‘무인 깔짚 자동관리기술’을 농장에 도입해 노동력을 절감했고, 시간을 단축했다. 농장에 드나들 일이 적어지니 질병 발생 위험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결로 현상 대비도 핵심이다. 결로 현상은 내·외부 온도차로 발생해 축사 벽면을 타고 수분이 흘러내려 축사 바닥을 질퍽하게 만든다. 질퍽한 바닥은 오리 면역력을 약화시켜 질병 발생을 높여 생산성을 감소시키는 원인이다. 

최성현 대표는 “햇빛이 축사에 잘 들어오는지 채광 시간을 점검하고, 수시로 환기휀을 가동해 바닥의 수분을 제거했다”며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농장 출입을 줄이고, 기본적인 방역수칙인 농장소독, 출입차량소독, 축사별 장화 갈아 신기 등을 철저히 준수했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많은 청년농업인들이 중도 포기했지만 10년 이상 오리농장을 운영해오며 나주·영암지역의 청년농업인으로 자리 잡았다. 또 지난해에는 대출금도 모두 상환했다.  

 

# ‘덕벤져스’, 청년농에게 경험·노하우 전수

10년 전 오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 현장은 대학에서 배울 때와 달랐다. 모든 걸 혼자 터득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덕벤져스’가 생겨난 이유다. 

덕벤져스는 최 대표와 농수산대학교 동기·후배 3명이 2019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친목단체다.

모두 오리를 사육하고 있으며, 10여 년 전부터 인연을 이어왔다.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오리 사육에 뛰어들었다는 공통점과 포기를 다 같이 고민하기도 했던 가족이다. 

예전 이들이 겪었던 경험과 노하우, 사양관리 등을 공유하고, 이제 막 시작하는 청년농업인들에게 전수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또 캠페인, 방역활동도 공동으로 추진해 귀감이 되고 있다. 현재 나주·영암 오리 청년농업인 10여 명을 이끌고 있는 정신적 지주다.

최성환 대표는 “덕벤져스는 오리 산업을 지키겠다는 등 거창한 포부가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서로 소통하고, 격려하면서 행복하게 오리를 사육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하게 됐다”며 “덕벤져스로 활동하면서 오리사육에 발을 디딘 청년농업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포기하지 않도록 희망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오리 사육이 힘든 것은 맞지만 청춘을 투자해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라며 “아무리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오리 사육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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