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책·무능력·무책임
‘3무 정권’ 조롱까지
국민의 안전 관심없으니
각자 도생할 수밖에

[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시작됐다. 일본의 기시다 총리가 방류에 반대하는 자국 내 수산인을 만나 향후 대책 등에 대해 논의하면서, 오염수는 언제든 방류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이미 시사했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우리의 정부는, 태평양 인접국가들조차 갸우뚱할 정도로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오히려 일본 정부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정반대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방류 이후 국내 수산업의 생존 위기에 걱정이 태산인 수산 관계자들을 진정시킬 대책 마련도, “지금 대책을 거론하는 것은 오히려 수산업을 더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며 단칼에 거부한 상태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이런 정부의 태도를 놓고 보면 국민을 위한 정부인지 일본을 위한 정부인지 국민만 혼란스럽다. ‘무대책이 상책’이라는 것은 이번 윤석열 정부의 특징이다. 
무대책·무능력·무책임하다는 이유로 ‘3무(無) 정권’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 싶다. 게다가 정부를 비판하면 정부 관계자는 가짜뉴스라며 ‘소장(訴狀)’을 꺼내들고 막바로 압수수색이다. 
향후 일본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에는 환경오염 처리에 대한 외부비용이 붙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 수산업자 등 역시 외부비용을 처리해야 한다. 
외부비용이란 매연·악취·소음 등 공해를 제거하는 데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을 말한다. 사업수행 주체 이외의 주체가 지출하거나 부담하는 희생이나 비용이기 때문에 그렇다.
향후 일본에서 수산물을 생산해 유통시키려면 후쿠시마 오염수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았다는 증명을 해야 하는 필수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오염수를 방류한 일본은 그렇다치자, 그런데 왜 국내 수산업이 생산하는 수산물에 치르지 않아도 될 외부비용이 첨가되는 것일까? 국내산뿐만 아니라 수입되는 모든 수산물에 방사능 관련 물질 잔류 여부를 검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비용은 온전히 수산 관계자의 몫일까? 아니다. 외부비용이 포함된 생산 비용은 반드시 소비자가격에 어떤 형태로든 반영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불안한 수산업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또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방류 자체에도 상당한 문제가 야기되지만, 방류 이후의 불안이라는 심리적 비용과 이를 잠재워야 하는 경제적 비용이 모두 투입돼야 하는 심각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도통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미국·일본에 대한 저자세 외교로 일관하더니 급기야 한미일 동맹 수준까지 운운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발을 푹 담그더니 ‘무기 지원’ 이야기가 들린다. 러시아에 진출한 기업들과 교민들이 초긴장 상태다. 수출을 지향하는 대통령이 오히려 기업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중국을 적국시 하는 정책의 흐름은 이미 대중무역의 급격한 감소를 야기시켰다. 북한의 남침 야욕에 대응한다면서 오히려 불안의 요소만 더욱 키우고 있다. 
자유시장경제를 제일의 모토로 삼는다는 이 정부가, 처음 물가안정을 이유로 농축산물 무관세 수입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땐 농축산업만이 희생을 강요 당하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향후 이 정부의 ‘3무 정책’은 변할 것 같지가 않다. 국민을 정말 바보로 여기는 듯 그렇게 반대하는 인물들을 서슴없이 무거운 책임의 자리에 앉힌다.  
차라리 무관심으로 일관된다면 오히려 낫다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 대표에 관여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누군가의 출마를 막았던 그 말대로 그냥 국민들이 각자도생하도록 무관심하길 바란다. 
교통사고가 발생한다고 도로를 없애고, 자동차 생산을 줄인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에 빠질 것이 두렵고, 반도체에 국운을 건다면서 수자원을 반도체에 몰빵함으로써 농업과 기타 산업들과의 물전쟁을 야기시킬 것이 두렵다. 
축산업이 오염산업이라는 말을 듣고 이참에 혐오스러운 축산업을 없애자고 덜컥 ‘축산 카르텔’을 들먹일까봐 무섭다. 민원을 이유로 축산농가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낼 것이 두렵다. 
한 사람의 귀중한 생명이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었음에도 그 죽음에 대해 슬퍼하지 않거나, 그 죽음에 대해 원인을 찾지 않는 이 사회가 두렵다. 
하물며 157명이 길거리에서 떼죽음을 당하고, 십 수명이 지하차도에서 수몰된다 한들 그들에겐 그냥 숫자에 불과한 이 사회가 무섭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긴 사연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매몰찬 사회가 두렵다.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비용만이 가격이 아니다. 제품에만 외부비용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행하는 모든 행위가 외부비용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내놓는 정책에는 항상 뜻깊은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정책을 시행할 때는 그러한 것들을 세밀하게 살펴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는 정부는 필요없다. 오히려 불안과 갈등만 유발하기 때문이다. 
각자도생이란 말은 참 오래전에 썼던 말이다. 오죽하면 각자 알아서 살자는 말이 나올까. 참 두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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