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침대를 만드는 회사가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를 하자 학생들에게 혼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그래서 그 회사에서는 이후 마무리 멘트를 ‘잠이 보약입니다’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우리는 최근 엄청난 기상이변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농사를 짓지 못하여 기아(飢餓)에 허덕이는 등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1982년 이전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기상 예보하는 곳을 중앙관상대(觀象臺)로 명칭을 유지해왔다. 보통은 사람에 대해 관상(觀相)을 본다고 하는 데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만 날씨를 관상으로 예보하는 것은 어느 측면으로 보나 어색하기만 하다.
관상이라는 말도 어색했는지 1990년에는 중앙기상대에서 기상청으로 승격하면서 명칭을 바꾸고 2008년 과학기술부에서 환경부 소속으로 이관 되었다.
기상청의 주 업무는 특보·예보, 태풍, 지진·지진해일의 예보와 기후통계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아무리 정밀한 분석과 데이터를 근거로 한다 하더라도 맞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예보에 맞추어서 대비하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황당한 일을 당한거나 마찬가지다.
조금더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 우리나라도 2019년 자체 기상위성을 도입하고, 수퍼 컴퓨터를 이용한 수치 모델을 2020년에 시작했으나 선진국에 비해서는 턱 없이 늦은 편이다.
현재 영국은 세계 최고수준의 예보시스템을 자랑하고 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19세기까지 기상예보는 미신으로 여겨졌다.
모든 일은 대형사고가 나게 되면 수습차원에서 대응방안을 내놓는다. 1859년 영국의 증기선 로열 차터(Royal Charter)호가 폭풍에 휩쓸려 탑승자 500명 중 41명만 살아남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기상 재난에 영국정부는 기상전문가인 피츠로이(FitzRoy)에게 그 이전에는 날씨를 단순히 기록하는 업무만 하게 했지만 이번에는 폭풍예보를 우선 허락하게 된다. 1860년 시작된 폭풍경보는 재난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피츠로이가 죽고 나서 영국정부는 기상청을 재정비하여 1879년 기상예보를 재개하게 되었고 오늘날 세계적인 기상강국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시 피츠로이가 예보(forecast·포캐스트)라는 단어를 써 미신과 구별한 이유는 예측보다 대비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었고, 예보는 이제 과학의 범주로 자리 잡았다.
피츠로이의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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