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표 없을수록
돈의 욕구는 커져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
철저한 자기 성찰을

[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한국인들이 명절 때면 삼삼오오 모여 즐기다 과열되면 싸움판이 되고 하는 화투판의 화투엔 12월을 뜻하는 ‘비(雨) 광(光)’에는 도복(道服)을 입고 우산을 받쳐 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일본인 오노도후(小野道風)라는 사람으로, 일본 이름을 뜻으로 풀었을 땐 ‘미치카제’라고도 부른다. 그는 일본의 전설적인 서예가로 실존인물이다. 
한국의 명필인 한석봉의 어머니가 아들의 공부를 위해 어둠 속에서 떡을 썰었던 일화처럼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인물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서예에 입문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실력을 쌓기 위해 열심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필력은 일취월장했고, 그 역시도 자신의 서예 실력에 스스로 감탄해 “이제 내 실력을 세상에 드러내도 되겠지” 하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무명(無名)의 스승이 보여준 필법의 세계 앞에서 오노도후는 감명을 받았다. 그와 견주자 자신의 글씨는 그저 어린아이의 낙서와 같았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공들여 써온 작품들을 모두 찢어버리고, 그 스승의 문하에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한 획 한 획 자신의 열과 성을 다해 글씨를 써내려갔다. 
그의 글씨가 점점 더 깊은 맛을 더해가고 있었음에도 스승은 칭찬 한 마디 없이 항상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더 잘 쓰도록 노력해라.”
그는 점차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스승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닐까?” “내가 높은 경지를 완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질투하는 것은 아닐까?”
그의 의심은 갈수록 깊어져 좌절로 이어졌고, 더 잘 쓰라는 스승의 말은 자신의 부족한 한계를 돌려서 말한 것으로 생각한 그는 비관 끝에 서예 공부를 그만두려고 결심하게 되었다. 
“나는 아무리 해도 안되는가 보다. 이젠 몸도 마음도 지쳤다. 해도 해도 안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어느 날 아침, 그는 짐을 쌌다. 자신이 한 없이 처량해서 스승에게 인사도 올리지 않은 채, 우산을 쓰고 문밖을 나왔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글씨에 쏟아 부은 그 많은 시간을 한탄했다. 그리고 그 고생을 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분수를 깨달았다는 아쉬움과 후회, 그동안의 고통스럽게 허비했던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우산을 쓴 채 우두커니 서서 빗물이 홍수가 되어 격렬하게 흐르는 개천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폴짝거리는 물체가 들어왔다. 조그마한 개구리 한 마리가 작은 바위 위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오노도후는 “성난 흙탕물에 휩쓸리면 개구리는 아마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바위 위로 길게 뻗은 버드나무 가지를 잡으려 필사적으로 뛰어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버들가지가 너무 높아 개구리가 붙잡기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때 오노도후는 개구리가 마치 자신의 처지와 너무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너도 나처럼 네 능력으로는 도저히 올라설 수 없는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고 있구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외면하려던 찰나에 거센 바람이 불어와 가지는 개구리 쪽으로 휘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개구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펄쩍 뛰어올라 성난 물결의 개천을 빠져나왔던 것이다. 
오노도후는 망연자실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봇짐을 풀어 내려놓고 나무 앞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자신에게 깨달음을 알려준 존재에게 경배를 드린 것이다. 
오노도후는 서둘러 오던 길을 되돌아 가 스승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공부를 시작해 오늘날 전설적 인물로 평가받는 서예의 명인 ‘오노도후’가 됐다. 
이 이야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뜻으로 많이 인용되곤 한다. 
과거의 사람들은 노력을 중요시 여기며 ‘노력하는 자에게는 이길 수 없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생각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 엄마·아빠 찬스가 고착화되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는 좌절감이 뿌리깊게 박혀졌다. 대를 잇는 부와 가난이 시스템화 되면서 노력은 그저 하찮은 ‘루저’들의 몫인 듯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 
지금 온전히 가축을 사육하고 있는 1세대의 축산농가들은 모두 오노도후와 같이 피와 땀으로 농장을 일궈낸 사람들이다. 오직 생존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한 마리부터 시작해 수 백마리, 수천 마리의 가축을 사육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모두가 하나 같이 명장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뒤를 잇는 2세들에게 1세대들의 노력은 별 가치가 없어 보인다. 가축을 돈의 산물로 보거나 조여오는 환경의 제약에서 ‘수틀리면 접으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많다. 
삶에 대한 목표 의식이 없는 이들일수록 그 욕구는 심하다. 노력은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느냐’의 자기 성찰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땀은 땀 흘리는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그리고 노력의 무게는 결실의 무게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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