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불신 해소’ 목표 가능할까?

시범사업 9년, ‘제자리걸음’
등급판정 조건과 기준 놓고
양봉협회-축평원 이견 팽팽
자율 등급제 방식으로 혼선

소비자, 도입 필요 원하지만
‘애국마케팅’만으로는 한계
유통·판매시스템 확보 절실
공신력있는 기관 확보 우선

[축산경제신문 이국열 기자] 오는 10월 ‘벌꿀등급제’ 본 사업이 시행되면서 국내산 벌꿀의 품질 향상이 기대되고 있다.

 

2023년 하반기부터 축산물 등급판정 대상 품목에 벌꿀이 추가돼 정부가 공식 인증하는 유통·판매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다. 벌꿀등급제는 벌꿀 품질정보 제공으로 소비자 불신을 해소시킬 수 있고, 2029년 FTA 시장개방을 대비해 국내 양봉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제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벌꿀등급제 본 사업 시행이 순탄치만은 않다. 

지난 2014년부터 9년간 진행된 벌꿀등급제 시범사업을 보면,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벌꿀등급제에 주축이 돼야 할 양봉농가들의 참여가 저조하고, 벌꿀품질 검사기관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지 않고선 벌꿀등급제 활성화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벌꿀등급제의 현 상황과 국내 양봉산업에서 안착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 벌꿀등급제 본 사업 추진  

벌꿀은 부모자식간에도 속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벌꿀 진위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맛과 육안으로 구별할 수 없는 위조벌꿀 즉, 가짜꿀이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유통·판매되고 있다. 여기에 외국산 벌꿀들의 국내 벌꿀시장 잠식은 벌꿀등급제 도입의 도화선이 됐다.

양봉산업 종사자,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요구는 2014년 벌꿀등급제 시범사업을 이끌어냈고, 다음 해 본 사업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양봉협회와 축평원 간 벌꿀등급판정 적용 조건과 기준에 대한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며 벌꿀등급제 본 사업은 흐지부지해진다. 우여곡절 끝에 2021년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에서 2023년에 본 사업을 추진키로 논의됐고, 지난해에는 양봉협회와 축평원이 합의해 축평원 중심의 등급기준(1+, 1, 2)으로 일원화를 결정했다.  

 

# 벌꿀등급제 참여율 저조 

벌꿀등급제의 가장 큰 문제는 저조한 참여율이다. 전체 양봉농가 중 참여농가는 10%에 불과해 9년의 시범사업 기간 내내 필요성에 의문이 따랐다. 

벌꿀등급제는 자율등급제 방식이며 양봉농가 혹은 유통업체들이 원할 경우에만 등급판정을 하고 있는데다, 양봉협회 등급기준과 축평원 등급기준이 이원화돼 혼선을 빚었기 때문이다. 비록 일원화된 벌꿀등급판정 기준으로 개편됐지만 벌꿀등급제가 안착하려면 양봉농가들이 얼마나 참여하는지가 관건이다. 

실제 양봉농가들은 등급판정에 소요되는 시간·비용이 부담될 뿐만 아니라 지금껏 벌꿀을 소비자와 직거래하고 있어 “굳이 벌꿀등급제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 많다.  

 

# 소비자들은 벌꿀등급제 도입을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꿀등급제 도입이 추진되는 배경은 ‘소비자가 원해서’다. 

양봉농가와 유통업체들은 벌꿀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한 소비자 조사결과에 따르면 벌꿀등급제 필요성에 대해 소비자 77.8%가 동의했고, 87%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벌꿀등급제 도입을 요구했다. 이는 소비자들도 벌꿀등급제 필요성에 공감하고, 정부가 인증하는 신뢰할 수 있는 국내산 벌꿀을 구매하고 싶다는 의중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FTA 타결 등으로 저렴한 외국산 벌꿀과 경쟁하려면 국내산 벌꿀의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유통·판매시스템이 확보돼야 한다. 소비자들은 가격과 품질을 꼼꼼히 비교하며, 합리적인 가치 소비를 지향하고 있다. 국내산을 이용해 달라는 애국마케팅은 벌꿀 판매에 효력이 없다.

 

# 벌꿀등급제 안착하려면 

벌꿀등급제를 시행할 수 있는 인프라 확충이 급선무다.

현재  벌꿀 품질을 검사할 수 있는 기관은 양봉협회와 양봉농협뿐이다. 벌꿀등급제가 궤도에 오른다고 해도 절대 소화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벌꿀등급제 도입과 관련해 “벌꿀등급제에 참여하는 양봉농가 10%를 위해 품질검사 기관을 신설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벌꿀등급제 본 사업이 결정된 만큼 양봉산업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저조한 양봉농가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해법과도 일맥상통한다. 양봉농가들의 벌꿀등급제 참여를 유도하려면 정부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벌꿀품질검사 기관을  늘려야 한다. 시군마다 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도 단위로 벌꿀품질검사 기관을 4~5곳만 마련한다 해도 벌꿀등급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벌꿀등급제 의무화 추진도 필요하다. 현행 벌꿀등급제는 자율이기 때문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과감한 투자와 제도개선으로 양봉농가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참여농가들에게는 정부가 벌꿀 품질을 공식 인증하는 등 외국산 벌꿀과 경쟁할 수 있도록 보호·육성할 수 있는 지원 혜택을 부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에 대해 한 양봉산업 관계자는 “벌꿀등급제는 외국산 벌꿀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응 방법”이라며 “소비자들이 믿고 찾아주는 고품질 국내산 벌꿀로 도약하려면 정부의 지원과 더불어 양봉산업 구성원들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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