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천호 회장 한국유산양협회·강원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국토 대부분 산지 최적합…농산부산물 활용까지

농가 부업 60년대가 전성기
낙농 발달하면서 점차 줄어
산지생태축산 기대감 고조
관광 연계한 6차산업 각광
미래지향 축산 대표적 축종

유산양은 ‘빈자(貧者)의 젖소’
체험관광 경영의 묘 살리면
유기축산 실현 가능성 무한
민관 협동 산업 보호 육성을

 

유산양은 최초로 가축화된 반추동물 중 하나다. B.C.7000~1만 년에 서아시아에서 가축화됐다고 추정된다. 고기를 비롯해 젖과 모피 등 아낌없이 인간들에게 제공해 준 오랜 기간 함께 해 온 가축이자 반려동물이다. 
유산양은 국토 대부분이 산지로 구성된 우리나라에서 농가의 유휴노동력과 농산부산물을 활용해 소득도 올리고 국민영양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축종이었다. 
당초 농가부업 형태로 적극 보급돼 1960년대 말에는 사육마릿수가 2만 마리에 달했으나, 1970~80년대 젖소낙농업이 발달하면서 차츰 사육마릿수는 줄어들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산양유’의 기능성으로 사유마릿수가 소폭 늘어났지만 정작 얼마나 많은 산양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사육하는지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산양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산지생태축산과 6차 산업을 실현할 수 있는 기대감 때문이다. 또 가공과 관광을 연계한 6차 산업과 더불어 동물복지를 추구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축산업에 적합한 대표적인 축종이다. 

 

# 젖과 고기를 얻을 수 있었다
한때 멸종을 걱정했던 야생 산양이 서울지역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진 바 있다. 수염이 달린 소라는 의미의 염소(髥牛)는 순우리말이며, 면양과 구분하여 산양으로 부르기도 한다.
체구로 분류하자면, 산양은 중가축으로, 소나 말과 같은 대가축에 비해 취급하고 이동시키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전 세계에는 약 570여 품종의 산양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아시아 국가들이 전 세계 산양의 약 84%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염소가 최초로 사육된 역사는 삼한시대인 약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유산양의 경우에는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자아넨(Saanen) 품종을 기준으로 할 때, 사육역사는 불과 100년을 넘지 못한다. 
젖을 짜기 위한 용도로 개량된 유산양(乳山羊)은 소위 ‘빈자(貧者)의 젖소(Poor men’s Cow)’라고 불릴 정도로, 사료작물 생산여건이 미흡해 소를 기르기가 어려운 민족에게 젖과 고기와 가죽을 얻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가치였다. 젖소 중심의 근대 낙농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자리를 잡기 시작한 국내 산양유 생산업은 도입 주종인 자아넨종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량으로 유통되는 우유의 그늘에 가려 산업적으로 안정된 정착을 이루지 못한 채 정체된 상태다. 

 

# 친환경 생태축산 실현 주체
산지 면적이 전 국토의 약 2/3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그 어느 축종과 비교해도 산양은 우리 실정에 가장 적합해 소위 ‘친환경 생태축산’을 실현할 수 있는 주체임에 틀림이 없다. 
또 경영의 묘를 살리면 어렵지 않게 유기축산을 실현할 수 있는 대표 축종이기도 하다. 
게다가 유산양은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의 체구를 가진 관계로 체험관광형 낙농목장 경영도 가능하다. 
하지만 산양의 젖은 여러 특장점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유통경로마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탓에 생산자가 직매 또는 산발적 유통에 의존해야 하는 지경이다. 국내 유산양 산업은 서구를 비롯한 외국과 비교할 때 규모나 기술, 구조적 측면에서 열위(劣位)를 면치 못하고 있다.  

 

# 사육마릿수 확보와 정착 시급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유산양의 수적 확보와 질적 정착이다. 제대로 된 산양유 생산과 유통소비시스템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사육마릿수 확보가 필수적인데, 최근 통계로 본 국내 유산양 사육마릿수는 약 1만여 마리다. 
이는 육종작업용 기초축군(핵군) 조성을 위해서도 축산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다. 
외부로부터의 수혈 없이 장기간 유전적으로 고정되어온 국내 유산양의 유전적 능력을 높이려면, 종축으로 적합한 기준혈통을 지닌 개체를 해외로부터 다수 도입·조성하고, 전문 가축개량기관   (아니면 공인 육종회사)의 주도하에 계획육종 프로그램을 철저히 운용해 국내 유산양의 양적 산유형질과 실용가치를 높여나가야만 한다. 

 

# 목장의 고유성 살려 틈새시장 공략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이, 제품의 생산은 판매(마케팅)가 원활하지 못하면 성립할 수가 없다. 따라서 시장 확보를 위해서는 산양유의 영양학적 장점과 건강 기능적 특성 등에 관한 대소비자 홍보가 필요하다. 
아울러 유산양 농장에 친환경 생태축산의 개념을 접목시키거나 사육에 적합한 지역에 장려해 일률적이기보다는 투자여력을 비롯한 목장의 고유성을 살리는 게 바람직하다. 
예컨대 유기생산형, 도시근교형, 관광지근접형, 체험교육형 등의 형태로 특화시킬 수 있다. 농장의 위치와 입지조건을 고려한 고유의 사육형태와 사양기술, 부존사료 개발 및 활용, 그리고 소비자의 선호도를 만족시키고 우유와의 경합을 피해 틈새시장을 공략할 각종 유제품 개발 및 이용방법, 숫양 비육효과의 극대화 등에 관한 다양한 연구사업도 필요하다.

 

# 유산양 산업은 정부 추진이 관건
유산양 산업의 당면과제들을 풀어나가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관련 정책을 펼쳐나가는 행정당국의 시각과 철학, 전문역량, 그리고 접근방법이다. 
지금까지는 축산업에서 농가의 수적 비중이나 우열을 주로 고려해가며 정책 적용의 비중을 차등화해온 것은 사실이다. 
소, 돼지, 닭 위주의 축산식품 수급에 역점을 두어온 탓에 염소는 우리나라 ‘전통 6畜’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특수가축’의 신세를 면치 못한 채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왔다.
하지만 유산양은 세계화를 통한 식량의 다양성과 친환경이라는 측면에서 입지가 강조되면서 떠오르는 축종이며, 이미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하고 있는 축종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많은 미진한 부분에 대한 연구개발, 질병방역이나 사양 및 경영기술 보급을 위한 양축인 교육 등 앞으로 국내 유산양 산업의 지속 발전을 위해선 정부의 추진이 관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표를 명확히 하면서 우선순위를 두고 단계별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특히 현재와 같은 단속과 규제 위주의 제도 적용은 낮은 소득을 감수하면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양축민의 사기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하다. 

 

# 상호양보와 협동의 자세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올바로 대처하지 못하는 유산양 농가들도 변해야 한다.
날로 심해지고 있는 염소육과 산양유 제품시장을 노리는 외국 축산의 파상공세 앞에서 안타깝게도 국내 염소축산업 종사자들의 일부는 사적(私的) 이해관계에 집착한 의견충돌로 사분오열 돼 궁극적으로 전원 패배를 자초하고 있다. 
이는 마치 침몰하고 있는 배 위에서 선원들끼리 격투를 벌이는 형국과 다르지 않다. 지금이라도 이해당사자들은 시급한 현실을 직시해 ‘公을 앞에 두고 私를 뒤로하는’ 상호양보와 협동의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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