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왜 그때 그 자리에 있었을까?”, “그때 왜 그랬을까?”
사고가 나면 처음엔 사고 뒤처리 때문에 경황이 없어 허둥지둥이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뒤따라오는 것이 ‘자책’이다. 마치 내 잘못인 것처럼.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정부 관계자들의 태도는 초지일관 책임을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희생자들의 탓으로 몰아붙인다. “거긴 왜 갔어?”에서부터 인파를 밀었다는 토끼모자 찾기까지, 이성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책임몰이’다. 

 

야당의 헛다리  짚기


이 사람들은 정말 국민들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그 비이성적인 해결방식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국민들의 생각은 결코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희생자 유족들이 서로 모여 아픔을 위로하며 앞으로의 일을 모색하고자 행정안전부에 명단 요구를 해도 도통 협조를 하지 않는다. 유족들이 모이는 것을 마치 반정부 투쟁집회로 생각한다는 반증이다. 
오죽하면 유족들이 각각 나서서 민변 등 NGO단체들의 도움을 요청할까. 영정이나 위패가 개인정보법 위반이고 유족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해명은 거짓말임이 입증됐음에도 정부는 뻔뻔하다. 
그토록 대통령의 사과가 듣고 싶고, TV에 나오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모습에 유족들은 잠이 안올 정도의 혐오감까지 불러온다며 경질을 요구해도, 대통령은 오히려 “그는 잘못이 없다”고 싸고 돈다. 
지난달 25일, 대통령의 한남동 관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 만찬이 있었다. 지난 9월부터 오랜 진통 끝에 출범한 비상대책위원회와의 첫 만찬이었다. 오후 6시 50분쯤부터 3시간 20분 가량 비공개로 진행된 만찬이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는 관저를 소개하던 중 캄보디아 방문 당시 찍은 사진이 논란에 휩싸인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날 아이들 때문에 정말 많이 울었다면서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이렇게 논란이 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고 한다. 
이날 만찬에서 윤 대통령은 비대위원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월드컵 화제와 사우디 빈살만 왕세자와의 회담 등 외교 성과를 공유했다고 한다. 
또 한일의원연맹 축구 경기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오갔고, 술 자리가 끝나는 것이 아쉬워 다음날이 공휴일인데 시간을 더 갖자고 했다고도 한다. 
이태원 참사가 한 달이 지났다. 잭임지는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국가위기관리센터가 왜 발동되지 않았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유족들의 억장 무너지는 소리가 크다. 
유족들이 ‘국정조사’를 요구해서야 비로소 국회는 마지못해 합의했다. 그것도 서로 전혀 연관성이 없는 ‘예산처리’와 연계해서다.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반빈곤’예산이 처리되지 않으면 국정조사는 진척이 없을 것이 뻔하다. 자기 할 일도 제대로 못하는 야당의 헛다리짚기다. 
누군가 묻는다. “이태원 참사와 그 이후 처리 과정이 울화증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일이 축산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글을 쓰느냐”고. 하지만 그 질문이 더 황당스럽다. 

 

축산업 대하는 자세


참사를 처리하는 정부의 방식을 보면, 농업과 축산업, 특히 축산업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와 비슷해도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안든다는 것이 기괴하다.
국가 경제를 앞세워 축산 강국들과의 잇따른 자유무역협정으로 얼마나 많은 농‧축산인들이 생업을 접어야 하는 희생을 치렀는지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농업인의 날이나 농업 행사 시작 전, 농업 관계자들은 농업을 위해 생을 다한 선배들의 희생에 감사와 위로의 묵념 시간을 갖는다. 
대표적인 분이 2003년 스위스 제네바 WTO본부 앞에서 한달 가량 1인 농성을 벌이고, 그해 9월 11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WTO 제5차 각료회의장 정문 앞에서 할복 자살한 농민운동가 이경해 옹이다.
이태원 유족들의 ‘억장이 무너진다’는 심정은, 농민이라면 축산인이라면 수없이 느껴왔던 아픔이다. 그런데도 공감하지 못하면 절망으로부터 학습된 것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기껏 국가가 서둘러 지정한 애도 기간을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공휴일처럼 여기면서, 그 흔한 성명서 하나 발표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도 그 기간이 끝난 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할 도리를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생산자단체가 운동체적 역할을 포기하고, 정당한 권리 주장을 주저하고, 애원하듯 정부에 매달려 지원 타령만 하고 있으면, 정부는 당연한 지원을 마치 동냥하듯 그때그때 찔끔찔끔 던져주며 길들이려고 하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를 비롯 생산자단체들은 ‘국민에게 사랑받는 축산업’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사랑받을 짓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흔적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사회적 아픔을 모르쇠하고 나의 아픔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나는 남의 아픔을 공감하지 않는데, 남은 나의 고통에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왜 우리만 희생되어야 하느냐고 따져 묻기 전에 말이다. 
축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축산업에 대한 몰이해를 탓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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