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21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니얼 퍼거슨은 그의 저서 「재앙의 정치학(원제, Doom)」에서 재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재난은 오히려 그것을 예언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어도,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마는 비극의 형태에 더욱 가깝다. 막대한 피해를 예언하는 재난들은 실제로 벌어지지 않을 때도 많을 뿐 아니라, 그런 예언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인지편향(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비논리적인 추론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경향)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예언을 듣는다고 해도 불확실성에 시달리다가 결국 설마 나까지 참사의 희생물이 되기야 하겠냐는 생각으로 무시해버리고 만다고 했다. 
축산업이 재난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는 여기저기서 수없이 많았다. 몇 년을 두고 패러다임이 바뀔 정도로 급변했고, 반도체와 자동차를 비롯한 공산품 성장의 희생양이 되어 왔으며, 일련의 정부 정책을 보면 단지 시기가 문제였을 뿐이다. 

 

설마 나까지 올까?


재난에 빠질 경우 그 재난이 향후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니얼 퍼거슨은 회색코뿔소, 검은 백조, 드래건 킹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정리했다.
회색 코뿔소란 누구나 예상할 수 있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무언가를 지칭한다. 지금 국내 축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재난이 실제 발생했을 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축산업계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뒤따르게 되는 상황을 검은 백조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이러한 재난이 걷잡을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정도로 확산되는 것을 드래건 킹이라고 한다. 이 지경에까지 가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적기에 적절한 대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 축산업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아직 이 상황까지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의미는 지금 적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맞닥뜨린 재난에 대응하면 그나마 재난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이란 것이 양보를 강요하고 그저 지원하는 흉내만 내는, 이전처럼 또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는 안일한 것이고 보면, 축산업계의 입장에서는 언제 드래건 킹으로 확산될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물가안정이라는 빌미로 무차별 수입도 모자라 무관세까지 세제 혜택을 남발하면서 희생된 농가들을 위한 쥐꼬리 지원책은, 이러한 무관세가 향후 국내 축산업계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축산물의 무관세 수입이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기여도가 그리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이유는 수입해 물량을 늘리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수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영향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신들의 강요로 인한 희생으로 재난에 빠진 축산농가들에게 고작 한다는 말이 ‘위기는 기회’라거나 ‘이겨낼 수 없으면 즐기라’는 복장터지는 말뿐이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야 위기는 기회가 된다.

 

재난 자본주의 기승


이미 축산농가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 축산현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지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한다. 이길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만 실은 이길 수 없으니 빨리 현장을 떠나라는 강요에 다름이 아니다. 
재난 상황에서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대기업이나 대자본주들 뿐이다. 그들에게 재난은 다시 없는 기회의 순간이다. 따라서 그들이야말로 재난을 즐기고, 재난이 몰려오길 바라는 부류다.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재난 자본주의의 폐단을 집중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나오미 클라인은 그의 저서 「쇼크 독트린」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를 표방했던 남미 국가들이 어떻게 폭망했는 지를 낱낱이 고발했다. 
그는 세금 감면, 자유무역, 민영화된 서비스, 사회지출 삭감, 탈규제화가 바로 ‘경제적 쇼크요법’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예를 든 여러 사례 중 최근 경제가 파탄나 전국민들의 시위가 전국으로 퍼지자 대통령 라자팍스가 몰디브로 도망간 스리랑카의 디폴트 사태는, 재난 자본주의가 어떻게 해변에서 생계를 유지했던 어민들의 삶을 빼앗는지 잘 보여준다. 
2004년 12월 26일, 연안의 여러 해변을 파괴한 쓰나미는 무려 25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250만 명의 재해민을 낳았다. 해변가에서 포장마차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풍경을 해친다는 이유로 개발을 하고 싶었지만 워낙 반대가 심해 손도 못대고 있던 정부는 쓰나미가 그 일을 해내자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해변의 영세어민들을 일소했다. 
관광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본을 유치하고 대부분의 개발 혜택은 대기업이나 해외 거대 자본주들에게 돌아갔다. 결국 재난은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했을 뿐아니라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 주었다. 
지금 축산업계의 경우가 이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정부의 무관세 축산물의 수입이 물가안정보다는 대기업, 수입업자, 유통업체들의 배를 불리게 하는 것 외에 무슨 효과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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