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코로나사태 장기화로 야기된 인플레이션과 세계 물류시스템에 제동이 걸리면서 급작스럽게 촉발된 물가 상승으로 전 세계가 온갖 비상대책을 내놓으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자원 대국들 간의 전쟁은 주변국가들을 포함해 전 세계의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나비효과를 발생시키며 곡물을 포함한 식량과 광물의 자원물류시스템을 교란하면서 물가상승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 됐다. 

 

고민하지 않는 정부


그 영향은 대부분의 원자재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대한민국 경제에는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각종 물가가 정부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치솟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바구니의 체감상승률은 수치상으로 나타나는 것 이상이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대책이라곤 수입 말고는 이렇다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에 급급하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단기간 물가가 잡히면 그럴 수도 있다고 수긍할 수도 있다. 
수입만으로 물가를 잡겠다는 생각은 정부가 고민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가 상승의 원인을 단순히 공급 부족으로 적시하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공급량을 늘리면 간단하다. 하지만 경제의 순환이 숫자의 ‘더하기 빼기’로 풀이될 수 있을까?
정부는 오는 7월 1일부터 연말까지 밀‧밀가루, 식용유, 돼지고기 등 식품 원료 7종에 대해 관세율을 ‘0%’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러한 할당관세를 적용해 돼지고기 5만톤을 수입한다. 물론 필요한 물량을 충분히 수입해 가격을 조속히 안정시킨다는 것이 이유다. 
구제역 대재앙 당시 2011년 MB정부가 치솟는 돼지고기 가격을 진정시킨다는 목적으로 ‘MB물가지수’를 설정하고, 무관세로 무차별 수입했던 행태와 동일하다. 아마도 당시 경제를 주도했던 인사들이 재등용해서 인지 전혀 변함이 없다. 
수입 위주의 되풀이되는 물가 안정 대책이 발표되자 당장 한돈협회와 전국의 양돈조합장 등 양돈농가들의 반발이 거세다. 항상 높은 가격을 유지해 오던 것도 아니고 심한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돼지고기 가격의 장기적 대책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해외 요인에 의한 국제 곡물가 상승 등이 국내 식품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한 결과라고 설명했지만, 5만톤의 돼지고기를 할당관세 적용으로 수입하는 것 외에 어떤 대책이 있는지 속 시원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2011‧2012년 할당관세 적용으로 돼지고기를 수입한 이후 소비자 가격이 안정됐을까? 그렇다면 ‘MB물가지수’는 성공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다.  
소비자 가격 안정보다 외국산 돼지고기의 수입 길을 터주면서 국내 양돈농가의 경쟁력 상실을 부추겼다. MB물가지수는 실패한 정책으로 낙인찍혔다. 피 같은 세금 들여 오히려 국내산업만 혼란스럽게 한 꼴이다.  
정부는 이번 돼지고기 할당관세 조치로 그간 수입이 미미했던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으로부터 수입이 확대되어 국내에 도입될 것이라며 수입선이 다변화될 것이며 이로 인한 효과는 소비자들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화자찬하 듯 말했다. 

 

외국산 길 터주는 격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수입선 다변화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미국산이 됐든 캐나다 산이 됐든, 호주산이 됐든 어느 나라의 돼기고기든 외국산이다. 오히려 FTA 중심국에서 수입할 수 있는 나라들이 더 늘어났다. 맛보지 못한 돼지고기에 또 입맛을 빼앗길 판이다. 
스페인의 돼지고기 ‘이베리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다. 고기의 맛이 국내신보다 월등했기 때문이 아니다. 수입업체와 유통업체들의 홍보 전략이 맞아 떨어지면서 마치 특별한 맛을 내는 돼지고기인 양 취급됐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대부분을 차지했던 유럽산의 수입 냉동 삼겹살은 과거로 회귀하는 최근의 소비 트렌드에 편승해 ‘옛 맛’을 앞세운 불판 위에 깔린 호일을 사용한 냉동 대패삼겹살이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이다. 
연탄불 위의 고추장 냉동삼겹살 등을 포함한 과거 인기리에 소비되는 방식에는 대체로 국내산 돼지고기가 사용되지 않는다. 업주들이 외국산을 싸게 구입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할당관세를 적용해 돼지고기 수입을 늘림으로써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것은 효과는 미미할뿐더러 그 후유증은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이명박 정부에서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방법을 구사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산업에 대한 관심이 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정부 정책에 대해 양돈조합장들은 “그동안의 관례로 볼 때 연간 40만톤 이상 수입되면 국내 돼지가격은 생산비 이하에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올해 5월까지 매월 평균 4만여톤이 수입되고 있어 이것으로 추정해 보면 연말까지 50만톤에 육박하는 돼지고기가 수입되며, 그 결과 그나마 겨우 70%대를 유지하고 있는 자급률도 무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5만톤을 부으면 어떻게 될지 뻔하다는 이유다. 
언제까지 수입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려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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