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실종을 대하는 태도
꿀벌 실종을 대하는 태도
  • 권민 기자
  • 승인 2022.04.22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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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지난 2년 간 대흉작으로 벌꿀 생산량이 급감해 생계를 위협받던 양봉농가들에게 올해 초부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전국에서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제주에서 시작된 꿀벌의 집단 실종사태는 한 지역에서만 끝난 것이 아니라 강원까지 전국에서 고루 발생해 그 추정된 숫자만 해도 수십 억 마리에 달한다. 특히 경남지역에서는 양봉농가의 봉군 중 70% 이상이 집단으로 사라졌고, 해남‧창녕 지역은 90%가 증발되어 벌을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탁상행정에 편의주의


이들 지역 농가의 말을 빌리면,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어 버린 것 같다. 월동을 마친 벌을 깨워보니 벌통의 꿀벌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전국의 양봉농가들이 뜻밖의 사태에 당황해 하자 갑자기 벌어진 집단 실종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농림축산검역본부, 지자체, 한국양봉협회로 구성된 민관합동조사반은 전국의 피해 현황과 원인 파악에 착수했다. 
민관합동조사반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정부가 발표한 내용은 이렇다. 꿀벌의 집단실종의 원인은 ‘해충’이다. 지난해에 발생한 꿀벌응애류‧말벌류에 의한 폐사가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꿀벌응애류를 예찰 못한 양봉농가들이 방제시기를 놓쳐 봉군이 붕괴된 데다, 응애류 피해 최소화 목적에 3배 이상의 약제를 사용해 꿀벌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꿀벌의 집단실종은 양봉농가들이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약제를 과다하게 사용함으로써 빚어진 ‘인재(人災)’라는 뜻이다. 게다가 농림축산식품부는 한술 더 떠서 꿀벌 피해는 제한적이어서 양봉산업뿐만 아니라 작물 재배에 미치는 영향도 걱정할 바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농식품부의 이같은 결론은 정부가 지금 산업을 보는 관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형국이다. 산업을 이루는 생태계를 무시한 채 산업 현장이 어떻게 굴러가는 지에는 관심이 없고 덩어리만 놓고 보려는 탁상행정에 편의주의까지 더해진 무사안일의 전형이다. 
애당초 민관합동조사반의 결론은 약재의 과다사용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앞의 한 조사반원과 달리 또 다른 조사반원은 “강한 봉군들은 단단하게 밀집해 외부환경에 강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약한 봉군은 민감하게 반응한다”면서 “약화된 봉군으로 월동 중이던 일벌들이 화분 채집 등 외부활동으로 체력이 소진됐고, 외부 기온이 낮아져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농식품부가 선택해 내린 결론에 따르면 약재의 과다사용으로 봉군이 약해졌다는 것인데, 허약해진 봉군이 어찌 약재 탓 만일까? 
최근 몇 년 간 이상기후가 이어지면서 대흉작으로 먹이가 부족해 꿀벌들의 면역력이 떨어짐에 따른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020년 여름, 강원도 철원의 한 양봉농가에서는 벌들이 벌통 주위에서 떼죽음을 당한 일이 발생해 충격을 준 일이 있다. 
더 충격적인 일은 벌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고 있었던 것이다. 아사직전의 벌들은 궁여지책으로 먹이 순서를 정하고 있었다. 노령의 벌들이 먼저 벌통에서 나오고 적정 마릿수를 유지하기 위해 애벌레를 죽이고 있었다. ‘벌이 굶어죽는다’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믿고 의지할 곳 맞나

    
원인이 뭘까? 왜 벌들이 굶어죽는가? 양봉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양봉농가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다. 지금 기후 위기의 직격탄을 양봉농가가 맞고 있음을 뜻한다. 다른 축종이나 산업에 비해 외견상 규모가 적어 마치 투명산업처럼 보이지만 지금 양봉산업은 붕괴 위기에 처해 있다. 
이전에는 아카시아꿀이 안 나와도 잡화, 찔레꽃도 있고, 때죽도 있었다. 4월엔 유채꿀, 5월엔 아카시아꿀, 6월 밤꿀, 7~8월 싸리꿀, 9월엔 메밀과 들깨 등으로 계절별로 다양한 밀원이 풍부했지만, 2020년부터는 모든 꽃에서 꿀이 분비되지 않는 상태다. 
뿐만 아니다. 아카시나무의 개화도 땅끝마을 해남과 서울대공원이 동시에 피는 등, 남쪽 지방과 북쪽 지방의 개화기 차이가 예년 15일에서 최근 7~10일로 짧아져, 채밀기간이 45일에서 25일로 크게 줄어들어 꿀벌의 수난은 물론 양봉농가도 울상이다. 
벌이 굶주려 굶어죽을 정도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바로 알 수 있다. 일부 지자체와 일선축협들은 양봉농가들의 심각한 상황을 이해해, 꿀벌들의 먹이로 설탕과 말벌 포획기 등 양봉기자재 등을 지원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가 대수롭지 않고, 언제나 버릇처럼 ‘농가 탓’을 하는 것은 직무 유기요, 책임 회피다. 
기후 위기가 지금 양봉산업을 벼랑으로 모는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그에 따른 다양한 지원과 대책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업무는 복잡해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자금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래서일까?
농가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져주지는 못할망정 부족한 생산량은 대체가 가능하고, 자가수정과 인공수정에도 문제가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농림축산식풉부는 정말 농가들이 마지막으로 믿고 의지할 곳이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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