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지난 4일, 260만 농어민의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해 결성된 ‘CPTPP 저지 한국농어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총궐기대회에 부쳐 결의문을 발표했다.
비대위는 이번 총궐기를 “농어민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정부의 불통행정을 강력히 규탄하고,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저지하기 위한 결연한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1980년 이후 본격화된 개방농정 기조와 2004년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무려 57개국과 우후준순 체결된 자유무역협정으로 우리 농어업‧농어촌은 성장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면서 “이는 경제발전과 수출주도형 성장주의라는 미명 아래 농어업‧농어촌을 철저히 짓밟고, 농어민의 희생을 강요한 결과”라고 규정했다.

 

벼랑 끝으로 내몰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역대 최고 수준의 시장개방을 지향하는 초대형 자유뮤역협정인 CPTPP 가입을 위해, 또다시 농어민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강변했다. 
CPTP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후발주자인 탓에 기존의 가입 국가들의 만장일치의 승인이 있어야 하므로 치러야 할 대가가 적지 않다. 당장 일본의 후쿠시마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 자유화가 있다. 
이와 더불어 위생검역 문제로 수입을 규제해온 신선 농수산물 수입의 본격화는 물론 중국산 농수산물의 수입은 국내 농수산업의 막대한 피해를 야기할 것이 불보듯 뻔한 노릇이다. 
국민 건강과 안정에 힘써야 할 정부가 오히려 국민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치적 쌓기에 눈이 멀었다고 비대위는 반발하고 있다. 
지금 농식품부가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우스개소리가 들릴 정도로, 문재인 정부의 농정은 불통과 오만 그리고 독선으로 일관됐다. 그동안 김현수 장관을 비롯한 농식품부의 농정을 보면 비대위의 이같은 독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다가올 윤석열의 정부는 어떨까? 문재인 정부 이전의 이명박‧박근혜의 정부에서는 사뭇 달랐던 것일까? 힘들었던 고난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한 순간에 터진 것은 아니었을까? 과연 5년 정권만의 문제였을까? 한 번 따져볼 일이다. 
생필품 가격이 오를 때마다 물가 안정이라는 빌미로 농축산물의 가격이 인위적으로 통제되고, 풍년이 들면 풍성해야 할 농민들의 마음은 오히려 가격 폭락으로 쪼그라들며, 흉년 때는 수확 저조로 울어야 하는 고통의 상황을 어떻게 5년 정부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화풀이로나 치부될 일이다. 
비대위가 결의문을 발표한 그날, 권영세 대통령 인수위 부위원장은 ‘물가 안정’의 시급성 문제를 꺼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10년 만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며 서민 피해 최소화를 위해 범부처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물가 안정을 들먹일 때마다 두근거리는 것은 물가 상승의 주범이 농축산물로 규정될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의식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것인 만큼 어느 정부 들어서든 인위적 가격 조정의 범주로 우선 잡는 것이 바로 농축산물이다. 

 

장관 바뀐다고 될까?


하지만 그 중요성만큼 중요한 산업으로 치부해왔느냐에 접근하면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어느 트롯 가수의 노랫말처럼 눈물짓던 보릿고개가 더 이상 우리의 일이 아니고, 이제는 기억조차 못하는 현실이다 보니 마치 공기처럼 손만 닿으면 언제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하찮은 것처럼 되어버렸다. 
마트에만 가도 산더미처럼 쌓인 먹을거리 속에서 그저 내 마음에 맞는 것만 돈을 내면 골라 먹을 수 있는 이 풍요로움 때문에, 그것을 생산하는 농민들의 땀과 고민조차 하찮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생활습관이 되어 버렸다. 
효율성을 먼저 따지는 정부의 경제정책은 그 산업의 공적인 가치보다는 화폐 가치에 더 치중하게 만들고, 그러한 기조는 어떤 산업이 더 많은 화폐와 부를 가져다주는 지에 따라 순위를 매긴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품질이 좋고 가격도 싼 먹을거리는 세계 어디에든 널려 있으니 먹을거리정도야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어리석음이었음을 근래의 세계사 속에서 보았음에도 결국 남의 나라 일로 치부하고 있으니, 철학이 없는 농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공기가 희박하면 당장 숨쉬기가 힘들 듯 먹을거리 구하기가 어려우면 당장 살기가 편치 못하다. 세계화가 얼마나 허망한지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경이 닫히면서 먼저 체험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빚어진 곡물과 광물 자원의 동결 여파는 아직 경험하지도 못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물가가 치솟고 있다.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를 남의 손에 의지하면 아무리 내 손에 많은 화폐를 쥐고 있어도 무슨 소용이겠는가? 식량주권, 식량안보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철학이 없이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농식품부장관의 역할이 중요하긴 하지만 작금의 현실이 장관 한 명이 바뀐다고 될 일이겠는가? 먹을거리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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