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 1950년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75달러(8만8천원)에 불과 하였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2020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1,881달러(약 3,762만 원)로 이제 선진국으로 도약하였다. 예기치 않았던 코로나19가 장기화 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 또한 침체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세계를 열광시키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류(韓流)다. 한류가 세계에서 각광받게 된 배경은 1997년 무렵부터 문화 수출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정책에 기인한 것으로 문화 상품들의 한류는 무궁무진하다. 음악에서는 방탄소년(BTS)·드라마·한류스타·화장품·식품·게임 등 그 분야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산악인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인 루트를 개척하면서 세계등반 사상 독보적인 존재로 한국 등산의 금자탑을 쌓은 K-등반의 신화적 존재가 고(故) 김 창호 대장(隊長)이다. 국내 최초로 무산소(無酸素) 히말라야 8000m급 14좌(봉우리) 완등에 성공한 김 창호 대장을 포함한 한국인 5명이 네팔 히말라야 등반 도중 숨졌다. 그의 나이 49세였다. 김 창호 대장이 이끄는 ‘2018 코리안웨이(Koreanway) 구르자히말 원정대’는 9월 28일부터 구르자히말 남벽(南壁) 직등(直登) 신(新)루트(route·길)개척에 나섰으며 11월 11일까지 45일 일정으로 출정했다. 그는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개척 하고자하는 구르자히말은 네팔 히말라야 산맥 다울라기리(8167m) 산군(山群)에 있는 해발 7193m의 산봉우리다.
고(故) 김 창호 대장은 1969년 경북 예천출신으로 서울시립대를 나와 한국대학산악연맹이사, 히말라야-카라코람 연구소장 등을 지냈으며, 대한산악연맹 대한민국 산악대상(2006), 체육훈장 청룡장(2016)을 수상했다. 그는 세계 최단기간(7년10개월6일)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등정과 국내에서는 최초로 산소통에 의존하지 않고 무산소 14좌 완등 기록을 세운 세계적인 산악인이었다. 그의 위대함은 남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데 있었다. 그의 새로운 도전은 예상치 못한 돌풍 때문에 구르자히말 3,500m 지점 베이스캠프에서 멈추고 말았다. 하지만 그 기상과 기개는 언제까지나 다울라기리 구르자히말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좌우명은 등반을 성공하고 반드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집에서 집으로’였다. 비록 집으로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히말리아 14좌의 봉우리에 영원히 잠들어 있을 것이다.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맬러리는 왜 에베레스트를 목표로 하냐고 묻는 말에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라고 답했다. 한국 산악인은 산이 있는 한 에베레스트 도전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