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이 땅에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 일어 난지 벌써 71년의 세월이 흘러 강산이 일곱 번이나 변했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 지난해 한국의 경제규모는 세계 10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Gross Domestic Product)은 3만1497달러를 자랑하고 있다. 
단기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데는 근면 성실을 바탕으로 자원이 빈약함에도 중동 진출에서 땀을 흘리고 서독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일한 일꾼의 주역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또한 시멘트, 섬유,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의 수출도 우리경제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최근 한류(韓流·K팝·팬 1억 명·구매력 8조원)의 열풍에 힘입어 김치·고추장·라면·가전제품 등의 한국 상품과 문화에 대한 선호 현상은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다. 전후(戰後)세대들은 6.25전쟁의 참상을 알지는 못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지금 자유와 풍요를 구가(謳歌·만끽)하고 있다.
 연합군 참전이 승전의 교두보였기에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한다.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전력상 열세에 놓인 한국은 미국 등의 우방국과 연합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혜택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6.25전쟁 당시 참전국은 1951년 초까지 총 16개국이었다. 
군대파견을 신청한 국가 21개국 중 실제로 파병을 한 16개 국가는 미국·캐나다(북미 2개국), 콜럼비아(남미 1개국), 호주·뉴질랜드·필리핀·태국(아시아 4개국), 남아공화국·에티오피아(아프리카 2개국), 영국·벨기에·프랑스·그리스·룩셈부르크·네덜란드·터키(유럽 7개국) 이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전투 병력을 파견한 에티오피아의 ‘강뉴(Kangnew·초전박살을 의미)부대’에 대해 특별하게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51년 4월 13일 에티오피아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서 6037명의 출정식이 있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오직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워준 고마운 나라의 병사였다. 참전용사 중 123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고, 536명이 부상을 당해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지만, 253번 전투에서 253번 승리를 거둔 전설의 부대였다. 
그들은 월급 일부를 모아 동두천에 고아원인 ‘보화원’을 설립했다. 용사 중 일부는 이곳에서 1965년까지 고아들을 돌보고, 잠을 잘 때는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 곁에서 지켜주었다. 그들은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해 핍박을 받고 어렵게 살아간다. 
우리가 이제는 그들을 돌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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