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경북의 한 지자체가 운영하고 있던 운동부가 훈련 중 잦은 폭력 문제가 불거지자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다면서 아예 운동부를 폐지했다.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학교폭력·성 관련 문제 등이 발생했을 때마다 이를 해결한답시고 나오는 대책이 ‘폐쇄’다. 
여론에 뭇매를 맞으며 조직 전체의 비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대책을 마련하는 것보다 아예 없애는 것이 쉬워서인지 선 듯 택하는 것이 이런 방식이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싹 자르고 문제해결?


가장 쉬운 방법은 문제 될 만한 요소를 아예 잘라버리는 것이다. 아무도 그것과 관련된 추궁도 하지 않을 것이니 그처럼 속시원한 것도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같은 논리라면 청소년 문제가 심각해지면 청소년을 아예 없애면 되지 않을까? 성범죄가 발생하니 처음부터 고리타분한 옛날 선조들처럼 ‘남녀칠세부동석’을 법제화하면 또 어떨까? 아동학대의 끔찍한 범죄를 줄이자고 출산 후부터 정부가 맡아서 키우면 해결되지 않을까?
그럼 분명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모든 사람들이 들고 일어날테지. 하지만 버젓이 그런 일들이 축산 정책에서는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의원들의 ‘고병원성 AI관련 예방적 살처분이 과도하다’는 질타에 ‘성공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의원들이 “매몰 가축수가 역대 두 번째로 많고, 방역 정책이 예방적 살처분에 집중되면서 농가 피해와 예산 확대가 우려된다”고 지적하자, 정부는 「AI 방역대책」을 내놓으면서 예방적 살처분 덕분에 확산이 줄었다며 결과적으로 ‘성공작’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살처분 명령을 따르지 않는 농장 인근의 손해가 커질 수 있다”면서 “버티는 농장 때문에 주변 농장들이 재입식을 못하는 기간이 길어진다”고 얼핏 AI가 종식되지 않는 책임을 농장의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였다. 
때문에 사전 예방적 방역체계 제도화를 위해 축사입지 기준 강화, 축산업계 책임성 강화, 방역체계 개선사항 등 제도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농식품부가 주장하는 ‘성공작’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역대 최대 피해를 입은 2016~2017년 당시 야생조류의 고병원성 AI 발생건수는 59건이고 2020~2021년은 184건으로 212% 증가한 반면 AI 발생 건수는 2016~2017년 342건에서 2020~2021년 95건으로 75% 감소한 것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발생건수만 놓고 보면 그럴 듯하다. 하지만 살처분 마릿수를 비교해 보면 선 듯 동의할 수가 없다.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16~2017년 동안 총 3807만6000마리였으며,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3km로 넓힌 2020~2021년 2월 16일 현재 총 2808만1000마리다. 
발생건수에 비해 엄청나게 많이 매몰했다는 말이다. 미리 그 많은 가금류를 살처분했으니 건수가 줄어든 것은 당연하다. 더 큰 문제는 아직 AI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민하고 고민할 때

 

2월 28일 농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발생농가는 가금농장 101건, 관상용 농가 2건 등 103개의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했으며, 살처분 마릿수는 2904만8000마리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식품부는 살아 있는 생물인 가금류를 예방적이라는 이름으로 살처분하는 것을 마치 물건을 소각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때문에 희생을 강요당하며 생업을 접어야 하는 농가의 아픔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생물의 무차별 살육에 대한 윤리의식조차 갖지 않은 것에 대해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로 인한 가금농장의 축산농가들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공무원이 가져야 할 덕목도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동물보호단체로부터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이는 잔인한 행위에 대한 반발과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자, 발생건수가 감소세를 보이고, 자신들이 강력히 추진해온 예방적 살처분 정책이 효력을 보이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예방적 살처분의 범위를 1km로 축소했다. 
정부는 살처분 과정을 취재하고 신문에 게재하고 방송을 송출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언론사에 요청해왔다. 그에 발맞춰 언론들이 자제하는 것은 무차별적 살처분 정책이 옳아서가 아니다. 그로 인한 축산에 대한 혐오감으로 축산을 생업으로 하는 농가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는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살처분은 극단적인 정책이다. 모든 궁리와 방책이 효과가 없을 때 쓰는 마지막 방법이다. 왜냐하면 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나긴 하지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농가에게 돌아갈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혈세가 허투루 낭비되지 않기 위해서다. 
게다가 정부는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 그럴려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민의 중심에는 국민의 안위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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