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력 2배 들어도 친환경농업만이 살길

 
웰빙(Well-being)이 새로운 소비테마로 떠오르면서 가장 각광받는 분야 중 하나가 유기농산물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삶을 중시하는 웰빙족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각종 미생물과 퇴비를 이용해 생산한 쌀과 채소, 과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현대·롯데 등 유명 백화점은 물론 이마트·까르푸 등 대형할인점에서도 친환경농산물 코너가 따로 마련될 정도로 최근 유기농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불붙고 있다. 한살림이나 생활협동조합 등 유기농산물을 소비자와 직접 연결해 주는 조합형태의 직거래와 유기농산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인터넷쇼핑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손만 뻗으면 언제든지 다양한 유기농산물을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농촌 현장에서는 유기농이 농업인의 소득 증대는 물론 삶의 질을 높이며 우리 농촌의 경쟁력을 키우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 유기농을 시작한 것은 80년대. 그러나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불과 2∼3년전이지만, 농촌 현장에서는 이미 20년 전부터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던 관행농업을 지양하고 오리와 미꾸라지, 미생물균 등을 이용한 유기농법이 확산돼 오고 있다.
그 선두에 선 농민들이 바로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일대 (사)팔당생명살림 소속 농가들. 팔당 상수원보호구역에 포함돼 있는 이곳은 온갖 규제로 인해 농사짓기도 어려웠지만, 10년전부터 유기농이 확산되면서 팔당 물을 살리고 농민도 함께 사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고 있다.
아이들을 모두 교육시키고 뒤늦게 양수리로 온 공만석(55)씨의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브루컬리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공씨는 아침에 일어나 비닐하우스 문을 열자마자 “내 새끼들 잘 있었니”하며 인사부터 건넨다. 농작물도 주인이 사랑을 주는 만큼 싱싱하고 건강하게 자라준다는 신념 때문이다.
도시에서 유통업에 종사하던 공씨는 평소 유기농업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터라 50살이 되던 해 미련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이곳으로 왔다. 유통과정에서 만난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들 중 대표적인 것이 안전한 먹거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돈 벌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노년을 농촌에서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유기농에 뛰어든 것인데, 욕심을 내지 않아도 노력하니까 수입도 괜찮아지더군요."
공씨의 브루컬리 재배법은 간단하다. 농약, 화학비료를 일체 안 쓰고 퇴비와 땅속의 지렁이가 만들어주는 미생물균이 전부. 대신 진딧물 등 농작물 해충이 발생하면 일일이 제거해줘야 하는 등 관행농업에 비해 품이 2배 이상 들어가는 것이 고생일 뿐이다. 그렇게 일군 땅은 그에게 연간 6000만원의 소득을 안겨준다.
2년 전부터 이곳에서 배추 등 각종 채소류를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박춘서 씨는 “유기농이 땅도 살고, 농사꾼과 소비자들도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박씨는 8년 전까지만 해도 경북 영주에서 관행농업으로 10년간 농사를 지어왔었다.
“하루에도 2∼3번씩 농약을 쳐대는데, 사람이 할 짓이 못 되더군요. 농약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는 농업인 자신뿐만 아니라 그 농산물을 먹는 소비자들에게도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도시로 나왔다가 지금은 이곳에서 맘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박씨의 소득은 관행농업 때보다 절반 이하로 줄었다. 그러나 그는 농약과 화학비료로 죽은 땅을 지렁이와 두더지, 각종 미생물이 공존하는 산 땅으로 만들고, 이들의 힘으로 생산된 유기농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더 뿌듯하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개발한 계분 퇴비(닭의 분뇨와 톱밥 등으로 만든)를 보여주면서 “전에 없었던 농사일의 즐거움을 되찾았다, 오늘 살려고 내일을 망치는 바보짓을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양수리에서 이들과 같이 유기농을 하는 농가는 모두 80여 가구. 94년 12농가에 불과했던 팔당생명살림 소속 농민은 올해 80여 가구로 불었고, 이들로부터 무공해 채소를 공급받는 도시 소비자 회원만 1000가구를 넘어섰다. 양평군에서만 2700여 농가가 친환경 농업을 해 농협 하나로마트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팔당생명살림 사무국 정영기 팀장은 “이곳 농민들은 물을 오염시키지 않는 유기농을 하고 소비자들은 이들이 생산한 안전한 농산물을 사먹는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며 “유기농은 젊은 농군들을 다시 농촌으로 불러들이고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동시에 식탁에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선순환을 이룬 셈"이라고 강조했다.
충북 괴산에 있는 눈비산마을도 축산업에 유기농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킨 곳. 이곳에서는 병아리 때부터 수입사료 대신 풀을 먹이고 항생제나 성장호르몬을 한번도 투여하지 않은 건강한 닭들로부터 유정란을 생산하고 있다. 이 마을은 지난 87년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해 온 조희부(56) 씨를 포함해 모두 5개 농가가 공동생산, 공동분배 형식으로 운영하며 유기농으로 흙·물·공기를 되살리고 있다.
“같은 달걀이지만 유정란과 무정란은 차이가 많아요. 유정란은 병아리를 부화할 수 있는 반면, 무정란은 부화할 수가 없죠. 결국 유정란은 살아있는 달걀이라고 할 수 있지요."
조씨는 사육방법도 일반 양계장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넓은 공간에 암·수컷을 함께 방사시킴으로써 운동량이 많고 그만큼 건강해 질병에 걸리는 일이 별로 없다.
“닭의 배설물이 바닥에 깔아놓은 볏짚이나 왕겨 등과 섞여 발효되면 그것이 다시 닭의 먹이가 됩니다. 그래서 계사에 닭을 넣을 때 왕겨 등을 넣어주면 퇴계가 돼 닭을 빼낼 때까지 치울 필요가 없습니다. 또 치우는 배설물도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인근 밭에서 재배하고 있는 농작물의 거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어느 것 하나 오염물질이 배출될 여지가 없는 유기적 순환농업이 실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한 유정란은 대부분 한살림에 출하하고 있으며 일부는 도시의 생협으로도 출하된다. 이곳에서 사육하고 있는 1만여 마리가 하루에 8000여개의 알을 낳아 출하되지만 직거래만으로도 물량이 달려 일반시중으로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기농을 하는 대부분의 농민들은 돈에는 큰 관심이 없다. 관행농업보다 소득이 절반 이하로 감소하더라도 유기농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흙과 물, 공기 그리고 농민과 도시민이 함께 살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부 제공>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