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문매체에서 창작 집단 ‘이야기와 동물의 시’, 생명다양성재단이 기획한 ‘절멸-질병X시대, 동물들의 시국선언’을 재구성해 기사화했다. 여기에 작가‧유튜버‧뮤지션‧동물권변호사‧동물법연구자‧기생충연구자 등 총 30명이 참여했다.
‘돼지가 말했다. 나는 운다. 죽임 당한다. 썰린다’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내용은 이렇다. 코로나 원인균을 퍼뜨려 인류 말살을 기획했다고 오해(?) 받는 것이 억울한 박쥐, ‘ASF로 죽음을 맞이한 것은 자신인데, 숲을 들쑤시며 쏴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멧돼지, ‘그 덕분에 온전한 상태에서 살 처분되고 있다’는 돼지를 의인화한다.
 
 
사육방식 비난 일색
 
 
또 ‘철새가 옮겨오는 감기로 매년 몰살되고 있다’는 오리는, 죽어가면서도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절규한다.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고, 거꾸로 매달린 채 가위에 발목이 잘리는 꿈을 꾼다’는 양에서부터, ‘K-푸드로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생명이 짧아지고 때때로 무더기로 생매장되고 있다’는 닭과 ‘몸에서 뽑아낸 기름이 인간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헛소문 때문에 갑작스럽게 황당한 죽음을 당하고 있다’는 크릴새우까지.
재구성 기사가 인터넷에 뜨자 댓글 대부분이 가축을 잔혹하게 키우는 행위에 대한 비난 일색이다. 축산을 대변한다는 일부의 자칭 전문가는 축산 왜곡에 대해 흥분하며 축산농가들의 분노를 자극한다.
극단적 채식주의자인 비건들의 무차별적 축산 공격에 대해, “왜 잘하고 있는 축산농가 전체를 매도하느냐”거나 “고기를 먹기 싫으면 그만이지 육식하는 사람을 마치 ‘식인’하는 것으로 왜곡하느냐”며 같은 식의 대응을 해본들 축산 왜곡이 나아질 듯 싶지는 않다.
극단에 극단으로 대응하는 것은 싸움만 하자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축산업이 불필요한 존재도 아니고 그들의 말처럼 ‘잔혹하게’ 사육하고 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인지시키는 것이다.
극단적 채식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윤리’를 내세우고, 반대의 입장에 선 사람들을 ‘비윤리적’으로 매도하지만 육식을 하는 사람이 비윤리적이라는 그 명제 자체가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과거 축산업의 행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들이 태반이어서,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축산업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동물복지에 초석을 쌓은 동물복지 활동가인 루스 해리슨은 1964년에 저서 「동물 기계」에서 이미 이 같은 논쟁에 일침을 가했다.
“동물 학대에 관한 논쟁이 모호한 이유는 건강하지 못한 두 가지 생각이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동물애호가는 동물을 의인화해서 사람과 동물을 모든 면에서 동일시하거나 동물을 사람보다 우선해 걱정하고 배려한다.
이런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나서서 도움을 주려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백해무익’하다.
한편, 동물에 대해 합리적이고 비감상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동물이 감정이 거의 없고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직 사람이 이용하기 위한 존재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고통이 명확하게 비난 받을 정도로 잔혹한 학대가 아닐 경우 그에 대한 개인적 책임은 외면한다.”
 
 
극단적 대응 반발만
 
 
동물학대에 대한 논쟁은 거의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러한 논쟁을 통해 축산업의 환경이 변화하면서 현재 우리는 ‘동물복지’라는 개념에 익숙해져 있다.
잔혹한 사육방식으로 가축을 키우지 못하도록 다양한 법률이 제정되어 있고, 동물도 지능의 차이와 상관없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인기를 끌던 기존의 ‘송아지 고기’의 생산 방식을 금지하고 있다.
공장식 축산이나 밀집사육에 대해 영국의 로윗 연구소의 프레스턴 박사는 “빠른 전환율, 고밀도 비육, 높은 기계화율, 저노동, 판매 가능한 제품으로의 효과적인 변환, 이 다섯 가지가 이른바 밀집식 동물생산 시스템의 핵심”이라고 정의했다.
때문에 공장식 축산이라고 하면 음울한 감금 사육틀 안의 가축들을 의미한다. 또 이들 업자들은 생명을 너무 하찮게 생각하고, 수많은 가축들을 도태시키는 일이 매일 일어난다. 도태시킨다는 것은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동물을 제거하기 위해 죽이는 것을 말한다고 혹평했다.
이러한 논리들은 극단적 채식주의자들의 논리 근거를 제시하지만, 당초 그 논리들이 “그러한 이유 때문에 축산업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막무가내식의 ‘축산 혐오’에 대응하는 방법에는 축산농가의 입장에서는 분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그들이 푯말을 들고 시위를 한다고 해서 같은 방식으로 억울함을 토로하기에도 마땅한 논리가 없다.
축산업의 공익적 가치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산업의 종사자로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면초가의 입장에 선 축산인의 입장에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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