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 거주 불능 지구」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의 말을 빌리면, 일부 학자들이나 정치가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를 다른 곳으로 집중하기 위해 ‘우화寓話’를 만들어내면서 광범위한 문제를 작은 곳으로 집중시키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웰즈는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벌의 죽음’에 관한 우화가 있다고 예를 들었다. 2006년을 기점으로 호기심 많은 독자들은 미국의 꿀벌 군락이 거의 매년 대량 멸종 사태를 겪고 있다는 새로운 환경 우화를 접했다. 

 

‘벌의 죽음’을 우화로


꿀벌 군락이 어느 해에는 36%, 그 다음해에는 29%, 다음에는 46%, 그 다음해에는 34%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계산해 보면 알겠지만 말이 안되는 수치다. 매년 그렇게 많은 봉군이 자취를 감췄다면 총 군락 수는 순식간에 ‘0’이 되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락 수는 오히려 꾸준히 증가했다. 주로 소박한 양봉꾼이 아니라 미국 전역에 수분용 벌을 끊임없이 납품하는 기업 경영자로 이뤄진 미국 양봉업자들이 기업 수준의 수익을 벌어다 주는 봉군을 줄어든 숫자만큼 다시 채워 넣기 위해 매년 벌을 새로 번식시켰기 때문이다. 
꿀벌 애호가들은 봉군 붕괴 현상을 보도하는 내내 벌의 복지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이유에 대해 꿀벌 사회가 이루는 장관에 진정으로 감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웰즈는 봉군 붕괴 현상이 우화로 자리 잡은 데에는 오히려 정반대의 특징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명 차원의 자멸을 앞두고 있는 개인들이 느끼는 철저한 ‘무력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만간 꽃가루 공급원이 완전히 사라지는 ‘생태 아마겟돈’이 닥칠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봉군 붕괴 현상은 이런 흐름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까지 미국의 유명 잡지들이 벌의 죽음에 관한 우화를 소개하는 특집 기사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꿀벌에 관한 허위 정보를 즐기기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위기를 우화로 다루는 것이 어떤 식으로인가 안심이 되기 때문이며, 그 때문에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이야기 속에 문제를 가둬 두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웰즈의 주장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벌떼가 죽어 나가는 데도 미스터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즉 전자파와 질병‧살충제가 수많은 벌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원인에 대해서는 웰즈의 주장이 옳다. 
이미 10년 전부터 유럽에선 CDC(벌떼 폐사 장애)현상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CDC 현상이란 휴대전화 전자파 때문에 벌들이 길을 잃고 집단 사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세계 양봉가들이 어느날 갑자기 벌통의 벌떼가 사라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CDC현상은 독일, 스위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로 번졌고, 영국 런던의 한 양봉업자는 40개의 벌통 중 23개가 빈 벌통이 됐다고 말했다. 
이 CDC현상으로 여왕벌과 알 그리고 몇 마리 미성숙 일벌만 남긴 채 벌통 속 벌들은 모두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아마도 벌집을 향해 돌아오던 중 길을 잃고 어디선가 죽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양봉가치 인정해야


또 하나는 질병이다. 2006년 미국에서는 부저병이라는 악성 바이러스가 번지면서 꿀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09년부터 번지기 시작한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악성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토종벌들이 거의 멸종 직전에 다다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미 우리나라의 토종벌은 76%가 폐사했다고 발표했는데 지금까지 완전한 치료약이나 예방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여기에 무분별한 살충제 문제는 더 심각하다. 대표적으로 최근 꿀벌은 새로운 종류의 살충제인 네오니코티노이드에 노출돼, 이 살충제에 접촉한 벌은 모두 사실상 ‘골초’ 상태로 죽어 갔다.    
여기까지라면 웰즈의 주장대로 ‘벌의 죽음’이 우화일수도 있다. 기후위기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의 죽음을 일례로 들었을 수도 있다. 벌의 죽음이 기후위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무분별한 약제 사용이거나 문명의 이기에 의한 것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 
또 지구에는 10만 종이 넘는 동물 꽃가루 매개자가 있다. 벌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지만 새와 포유류도 포함된다. 포유류 중에서는 과일박쥐가 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살충제와 같은 화학물질 과다 사용이 원인이 돼 꽃가루 매개자가 없어짐으로 해서 수많은 농부들이 달라붙어 손으로 일일이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하지만 벌의 죽음이 이런 원인으로 규명된다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양봉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설명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양봉농가들이 정부에게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것도 선 듯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양봉산업의 위기가 기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또 양봉산업의 가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다면 양봉산업은 축산업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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