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시인(1958~ 충남부여)이 쓴 <구부러지다>의 시를 음미해 보면 “강은 강물이 구부린 것이고/ 해안선은 바닷물이 구부린 것이고/ 능선은 시간이 구부린 것이고/ 처마는 목수가 구부린 것이고/ 오솔길은 길손들이 구부린 것이고/ 내 마음은 네가 구부린 것이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아마도 강(强)대 강(强)으로 대응하면 누군가는 패한다. 조금은 비켜서고 구부린 듯 져주면서 살아가면 훨씬 오래 갈 수 있다. 강한 것은 부드러운 것을 결코 이겨낼 수 없다. 완력으로 제압하면 반드시 또 다른 힘 있는 자가 나타나 반드시 패하게 된다. 약한 것은 본디 사람의 습성 상 건드리지 않고 측은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중국 역사상 황제의 제위에 오른 인물은 대략 200명으로 미천한 탁발승에서 황제로 등극한 사람이 명(明)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 1328~1398년: 70세를 삶)이 유일하다. 망해 가던 중국 원나라는 소금장수 출신의 장사성과 가난으로 절에 버려진 주원장의 대결로 압축됐었다. 주원장이 장사성의 주력부대를 포위코자 험악한 산을 넘어 후방으로 돌고 있을 때 일이다. 협곡의 외길 복판에서 산 오리 한 마리가 알을 품고 있었다. 새끼 품은 짐승을 해치면 업보를 받는다는 동자승 시절의 믿음이 떠올랐다. 주원장은 사활이 걸린 그 작전을 포기하고 그 산 오리가 여덟 마리의 새끼를 낳아 제 발로 길을 비킬 때까지 여러 날을 기다렸다. 물론 작전은 탄로 나고 전세는 불리하게 기울었다. 한데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적의 부장들이 부하를 거느리고 속속 주원장 휘하로 투항해 왔다. 천하를 얻고 잃는 그 큰 전쟁을 한낱 오리의 생명을 위해 유보하는 인간적 장수라면 그 휘하에 들어가는 편이 옳고 장래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화살 한 발 쏘지 않고 천하를 얻었던 주원장의 리더십이다. 주원장 처럼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를 유발, 화살 한 발 쏘지 않고 천하를 얻는 리더십이야 말로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 것이라 할 수 있다.
부드러움을 평생 화두로 무위자연을 역설하고 노장사상의 선구자로서 도덕경을 후세에 남긴 인류의 영원한 스승 노자(老子:BC.580~500?)는 춘추시대 초나라의 철학자로 전해지고 있다. 그의 스승 상용(商容)을 알현하고 돌아가시기 전에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침이 될 만한 말씀을 요청했다. “첫째 고향을 지나갈 때에는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가거라. 고향을 잊으면 안 된다. 둘째 높은 나무 밑을 지날 때는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거라. 윗사람을 공경해야한다. 셋째 내 입안을 보면 이빨은 빠지고 혀만 남았다. 이빨은 딱딱하고 굳센 것이니 먼저 없어지고 혀는 부드럽고 약하기 때문에 남아 있다. 부드럽게 남을 감싸고, 약한 듯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오랫동안 복을 받고 잘 살 수가 있고, 제 힘만 믿고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얼마 못 가서 망하고 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마지막 귀한 말씀을 노자에게 남겼다고 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장애물을 만난다. 잘 살아가려면 그저 구불구불하게 살아가야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부드럽다는 뜻으로 실제로 영국인들이 가장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생각하는, 교양 있고 예의 바르며 점잖은 사람을 지칭하는 ‘신사(gentleman)’란 말은 원래 ‘부드러운 사람’이란 뜻이다. 각자가 부드러운(보드라운?)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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