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한돈협회를 중심으로 한돈농가들이 청와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돈산업 사수‧생존권 쟁취’를 위한 무기한 1인 시위와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한돈농가들이 거리로 나와 생존권을 외친 그 시각,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잠잠하던 코로나19 확진자가 이태원 클럽발 86명이라고 발표했다. 결국 예정됐던 등교 개학도 1주일 연기됐다. 
의료진들의 피와 땀, 그리고 전국민들의 인내심으로 일궈낸 코로나19의 안정세는, 대구 신천지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전국 확산의 기로에 섰다. ‘생활 방역’으로의 전환점에서 또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가 거론된다.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와 바닥으로 수직 하강하는 경기와 맞물려 성별‧세대별 할 것 없이 국민 모두에게 심리적 우울증까지 몰고 왔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 “정신 못 차렸다”, 또는 “미쳤다”는 주변의 반응을 무릅쓰고 왜 한돈농가들은 거리로 나온 것일까?

 

농가에게 책임 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백신이 없는 ASF는, 치사율 100%로 한 번 발생하면 한돈산업을 붕괴로까지 몰고 갈 무서운 악성가축전염병이다. 9개월이 넘는 동안 접경지역에서 감염된 야생멧돼지 폐사체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발견 지역도 점차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생은, 한돈농가들의 ASF에 대한 공포와 예방적 살처분 농가들의 아픔을 덮었다. 
이날 하태식 한돈협회장이 “투명하고, 공정한 방역으로 전세계적 호평을 받고 있는 코로나19 방역과 마찬가지로 ASF 방역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변하는 이유다. 
이준길 한돈협회 북부지역협의회장은 “정부는 야생멧돼지는 관리하지 못하면서 농가에만 일방적인 규제와 기약 없는 희생을 강요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야생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재입식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생업포기는 물론 향후 기약도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항변했다. 
특히 이준길 협의회장은 농식품부 장관을 비롯, 관계자들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 재입식을 할 수 있겠느냐?”고 줄기차게 물어왔지만, 누구 하나 뚜렷하게 답을 주는 이가 없어 “이게 무슨 정부냐고 따졌다”고 한다.
한돈농가들이 코로나19로 국가비상사태의 상황에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정부의 무책임, 무대책, 농가에 대한 책임 전가다. 
특히 한돈농가들 사이에서는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코로나19를 다루는 방식이 전세계적인 표본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것과 반대로 농축산부와 환경부의 ASF 관리 방식은 악평을 받아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가장 중요한 목표 설정이 다르다는 점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국민의 안전’이다. 때문에 국민의 안전을 위해 현장에서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파악했고, 진단키트 개발과 드라이브 스루 검역을 도입했다. 

 

애원해도 본체만체


하지만 가축방역의 경우엔,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더 이상 확산되지 않게 한다는 ‘막연함’이다. 그러니 규제 위주의 대책이 나오고, 예방적 살처분을 감내했던 농가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무례함’만이 존재할 뿐이다. 
1일부터 고양‧양주‧동두천‧포천‧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 접경지역 9개 시군과 가평‧남양주‧춘천‧홍천‧양양 등 인접 5개 시군 총 14개 시군에는 양돈장 축산차량 출입을 전면 금지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말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한돈농가들은 아연실색했다. ASF를 막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한돈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오히려 농가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고, 가해자로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병의 무서움으로 인한 직접적인 공포보다는, 공포를 자극하고 증폭시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히스테릭한 반응들이다. 이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다. 
코로나19에서 촉발된 ‘역병’-신종 악성전염병-의 원인을 가축에서 찾으려 하는 움직임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축산농가에 대한 혐오감 조성이 바로 단적인 예다. 모든 역병이 동물과 가축으로부터 나온다는 식이다. 
이러한 사고가 완전히 틀리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축을 키우는 축산농가가 어느날 갑자기 역병 유발자로 취급받는 것은 지나친 편견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정부가 코로나19로 멈춘 경기를 살리기 위해 ‘한국판 뉴딜’로 피해산업을 지원하겠다면서 9개월 넘게 빈 농장만 바라보고 있는 ASF 피해농가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존대책도 마련해 주지 않고 있다. 
“‘한돈농가는 국민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냐”는 분함과 억울함이 한돈농가들로 하여금 비상시기에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거리로 나오게 한 이유다. 
ASF의 확산을 막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방역을 위한 방역이 아니라 국내 한돈산업의 보호와 발전이다. 정부의 방역 정책에 따라 예방적 살처분에 참여한 농가들의 희생이 전체를 위한 고귀한 것이 되려면 그 뜻에 맞아야 한다. 
정부가 강요하는 희생은 속임수로 가장된 재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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