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픔을 이겨내고 나면 Ⅲ
이 아픔을 이겨내고 나면 Ⅲ
  • 권민 기자
  • 승인 2020.03.20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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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이 혼돈스러운 상황이, 축산인들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지 않은 것은 왤까?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 바이러스 질병이 모든 경제 활동을 중지시키고, 이동통제를 위해 지역을 봉쇄하고 국경을 닫고,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로 잇따라 경제 사업장이 도산하고 아사상태로 내몰리고, 각 개인들은 생업을 잃고 망연자실해 하는….
축산인들에겐 거의 매년 겪었던 그 상황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축산인들 외에는 그 누구도 그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대해 체험하지 못했다. 그들이 소수여서였거나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동통제로 인한 축산농가들의 절절한 신음소리에도 그저 그들만의 꾀병으로 들릴 뿐이어서, 몇 푼의 보상금이나 생색내기용 지원만 해주면 그것이 정부가 또는 그나마 관심 있는 주변의 사람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혼돈이 바로 축산업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축산인들이 겪었던 일련의 과정과 어쩌면 그리도 빼닮았을까? 그렇다면 이 혼돈과 함께 올 상황은 안 봐도 뻔하다. 바로 급격한 변화다.

 

축산인들에겐 익숙


첫째, 고통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다.
흔히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나 자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케 했다.
미국 최고의 에세이 작가이자 소설가이며 예술평론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수전 손택은 저서 <타인의 고통>을 통해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쉽사리 자신과의 일체감을 느낄 법한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일종의 ‘관음증적인 향락’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가 아프리카의 비참함이나 전쟁의 참혹함을 사진을 통해 보고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보고 싶어하는 마음 즉 일종의 사디즘이다. 그는 일례로 세르비아인들의 대학살 와중에 사라예보에 있던 한 여인의 경험을 들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나 독일 사람들이 매일 이곳에서 벌어지는 살육 소식을 저녁 뉴스로 보며 ‘아 끔찍한 일이구나’라고 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고. 하지만 전쟁은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화마는 결국 자신에게까지 확산되어 오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모든 일상의 정지 상태를 지속시키고 있다. 우리가 아무런 의식 없이도 편하게 즐길 수 있었던 활동 모두를 제지시켰다. TV를 켜면 언제나 볼 수 있었던 스포츠가 사라졌다. 여행을 중심으로 한 예능프로그램도 정지됐으니 우울한 일상에서 웃을 일도 없어졌다.
악성 가축전염병 발병으로 멀쩡하게 키우던 모든 가축을 예방적 살처분한 후 갑자기 가축들의 울음소리가 그친 적막한 축사에 앉아 있는 축산농가의 저 망연자실함과 다를 바가 조금도 없다. 아마도 향후 이동통제라는 말이 나오면 지금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까?
둘째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1980년대 농업의 부업형태에서 분리돼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해온 축산업이, 국가 경제의 한 축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 바로 2010년 10월말부터 2011년 초까지 전국을 휩쓴 ‘구제역 재앙’이었다.

 

타인의 고통 알게 돼


악성가축질병이 발병하고 나서야 비로소 축산업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었으니, 최악의 상황이 현재의 위치를 인식하게 한 아이러니였다. 규모화로 인한 악취, 동물학대 등 부정적 외부효과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축산업은 양적 성장에서 마침내 질적 성장으로, 친환경으로, 지속가능한 미래산업으로의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이제 축산농가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양방식을 채택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때문에 농가 스스로 동물복지와 주변 환경에 맞춰야 하는 고비용의 생산방식체계를 갖출 수밖에 없게 됐다.
환경규제가 크게 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지원은 이전과 사뭇 달라 모든 것을 국가에서 지원해줄 수도 없으니 축산농가의 의식도 달라질 수밖에 도리가 없다. 안전과 위생에는 그에 따른 비용이 발생한다는 사실도 농가나 소비자나 깨달아가는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지불이 없이는 그 누구도 지금과 같은 재난 상태에서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가 하나의 연결망으로 연결된 상황에서 이제 위험은 항상 존재하며, 발생하면 그 규모는 상상 초월이기에 그렇다.      
뒤늦게 발생한 이탈리아가 순식간에 코로나19로 막대한 사망자를 내며 유럽의 진앙지로 변한 것은 국가 재정부실과 의료 시스템의 붕괴에서 비롯됐다는 평이다. G7회원인 선진국 이탈리아가 이렇게 망가진 것은 공공부문에 대한 투자 여력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국가에서 다 해주는 시대는 지났다. 소비자가 안전하고 위생적인 농축산물을 원하면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 할 준비가 되어 있듯, 그에 걸맞는 비용지불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소비자 이기주의가 점차 비판받듯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대부분을 ‘나 하나는 괜찮겠지’라는 무임승차의식에서 ‘나라도 참여하겠다’는 동참의식으로 바꿀 것임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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