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지금 영국 보건국 국제보건부 내에 코로나팀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 팀의 가입 의향을 물어 와서 물론 하겠다고 했어요.”
영국 보건국(NHS)에서 근무하는 딸에게 전화가 왔다. “그곳에서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나 따돌림은 없느냐?”는 질문에, 딸은 버밍햄 쪽에서 백인들에게 중국인이 구타당한 적은 있지만 한국인에게 부정적이지 않다고 대답했다.
뜻밖에도 오히려 한국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처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영국뿐만 아니라 대체로 외국에서의 반응은 대부분 ‘투명’하고 ‘발 빠르고’, ‘기술력이 뛰어나다’라고 했다.
캐나다에 있는 지인은 중국인들이 오히려 한국인들을 따돌리고 있어 ‘방귀 뀐 놈이 뭐 한다’고 정말 어이가 없다고 웃는다.
그건 이런 것이 아니냐고 설명했다. 학창시절의 ‘왕따’ 심리와 같은 것이라고. 왕따의 두려움을 알고 있는 이는 내가 왕따 당하기 전에 다른 친구를 왕따 시킴으로써 자신은 벗어날 수 있다는 심리 말이다.

 

국가의 부름 받들어


우리는 지금 너무 큰 아픔을 겪고 있고, 매일 늘어나는 확진자수와 사망자수에 침통해 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이 사태를 즐기는(?) 부류는 삼류 정치가들뿐이다.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벌써 책임전가다.
하지만 지금 국민들은 눈물겹다. 대구‧경북에 몰려 있는 확진자들을 보살피느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의료진들의 고투에 동참하기 위해 기꺼이 생업을 내던지고 달려가는 동료 의사와 간호사들.
대전 국군간호사관학교 임관을 앞당기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의무감 하나로 마치 전장으로 달려가기 위해 준비하는 75명의 생도들의 앳된 모습을 보면, 과연 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뭉클거림이 올라온다. 
“국가의 부름을 받았기에 이 어려운 시기에 국민을 위해 임하는 것이 군인의 자세이기에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우리들의 딸이요, 동생의 어린 목소리에는 결기가 서려 있다.
밥도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고, 부실한 식사를 알자 즉각 도시락 제공에 나선 시장 상인들, 아르바이트 학생의 기부, 잇따른 연예인들의 거액 기부, 특히 광주시민들의 “경증환자를 맡아서 치료하겠다”는 자발적 참여는 아마도 이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내내 여운이 남을 것이다.
광주시민들이 참여하면서 던진 말이 너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는 1980년 ‘5‧18’ 때 고립된 지역민으로서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 때문에 그 누구보다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의견일치를 봤다”고 했다.
에티오피아 난민을 중심으로 난민‧이주민들도 피가 모자란다는 소식에 자신의 피를 나눠주기 위해 국적과 직종을 망라해 팔을 걷어붙였다. 우리가 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나면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더 성숙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성숙’해져 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자기 비하 하지 말자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차별도 줄어들 것이고, 동서의 배타성도 희미해질 것이며, 이웃에 대한 시기와 질시와 미움도 한결 나아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 아픔을 잘 이겨내야 할 듯 싶다.
일부에서는 지금 수많은 국가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하는 상황을 보고 세계적 ‘왕따’ 신세라고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고 조롱하지만 세계는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당장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와 자국 내의 의료시스템으로 일순간 거부하고는 있지만 속이고 왜곡하는 중국이나 이란과는 큰 차이를 둔다.
그것은 우리가 코로나19를 대하는 방역의 투명성 때문이다. 백호주의로 유색인에 대한 차별이 강한 호주는 중국과 이란에 대해서 입국거부를 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아직 그런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과 비교하며 한국만큼 신속하고 정교하게 검진하지 못하는 자국 방역시스템을 질타받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지금 너무 힘에 겹지만 그래서 더욱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세계가 모두 쓰러져 단시간에 일어서기 힘들 것이라는 그 IMF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놀랄 ‘금 모으기’로 힘을 모았고, 대규모 기름 유출사고로 죽었다던 태안반도도 살려냈다.
유출된 원유는 조류, 강풍, 미흡한 초기 조치 등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인근 해수욕장과 양식장을 덮쳤고, 어패류가 대량으로 폐사하며 조업이 중단되자 태안 주민들은 절망에 빠졌다.
해안 전체가 시커먼 기름으로 망가졌을 때, 어르신들은 어린 손주들과 함께, 학생에서부터 부녀회, 경찰이나 취업 준비생이나 너나 할 것 없이 전 국민이 기름바다에 뛰어들고, 비탈지고 오염된 바위 위로 방제포 하나 들고 성큼 올라갔다. 
머리에서 발 끝까지 온 몸이 시커먼 기름에 더럽혀지면서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참담한 해안을 바라보며 눈물로 기름을 쓸고 닦고 건져냈다. 그렇게 태안반도를 우리는 살려냈다.
우리는 언제나 그랬다. 삼류 정치가들이 망쳐놓은 기강을 “내가 잘못 뽑은 탓”이라고 스스로 자책하면서 바로 세우려고 애썼다. 지금 우리의 자긍심은 깨질 대로 깨져 너덜거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다시 일어설 것을 한 번도 의심해 본적이 없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