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 편집국장

‘소의 트림과 방귀 양을 측정, 줄이는 방법을 찾아라’.
웃기는 영화 제목 같은 과제가 지구촌의 기후변화협약에 의한 교토의정서 발효를 계기로 농촌진흥청 축산연구소에 부여됐다.
‘소가 웃을 과제’‘이색적인 과제’등으로 가볍게 보거나 간과했다간 망신당하거나 코를 크게 다칠 수도 있는 과제임을 우선 명심하는 게 좋겠다.
지난 16일 발효된 교토의정서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세계 각국이 줄이자는 데 합의하고 서명한 것으로 사실상 의무가 수반돼 있다.
세계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국가인 미국은 부시 대통령의 반대 입장으로 협약당사국에서 탈퇴, 서명을 기피해버렸지만 우리나라는 서명을 함으로써 ‘온실가스’를 줄여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개발도상국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다소 느긋한 입장이긴 하나 마냥 느긋해 할 수는 없는 처지다. 전문가들은 정부는 물론이고 전 산업 분야가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이 같은 역설을 종합해 보면 국내 축산업계도 교토의정서 발효를 느긋하게 바라보거나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해서는 안 되게 생겼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주범 가운데 하나가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인 소의 트림과 방귀라는 사실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소의 트림과 방귀에 포함돼 있는 메탄(CH4)은 공장의 굴뚝과 자동차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단다.
비육우 한 마리가 연간 배출하는 메탄의 양은 40∼5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이 같은 메탄의 온실효과는 연간 2만㎞를 주행하는 휘발유 승용차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양이 미치는 효과의 75%에 해당된단다.
작년 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 사육두수를 감안해 보면 소들이 연간 배출하는 메탄의 양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01년을 기준으로 한국이 배출한 전체 온실가스의 0.4%는 소를 비롯해 염소 등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 배출한 것이라는 추정이 있어 눈길을 끌었는데 이는 되새김질을 하는 가축, 즉 축산업도 지구온난화에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해 축산선진국인 뉴질랜드가 ‘가축 방귀세’를 신설, 소와 염소 등에게 부과하려다 축산농가들의 거센 항의와 집단 반발로 철회했다는 외신 기사를 접했던 적이 있다.
그 기사 내용을 정독하고 나서 필자는“방귀세를 사람도 아닌 가축에게 부과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 목적으로 가축방귀세를 신설했을까”라는 물음표를 달고 솔직히 속으로 “소들이 웃을 노릇 아닌가”고 치부하기도 했는데 돌이켜 보니 지구온난화의 심각성과 가축이 배출하는 메탄의 양을 간과하고 직시하지 못한 무관심과 무지로 궁상을 떨었던 같다.
농진청 축산연구소에 떨어진 과제는 소의 트림과 방귀 양을 측정하고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 한다.
이와 관련 축산연구소 강수원 박사는 “밀폐된 공간에서 소의 트림과 방귀에 포함된 메탄 가스 등을 측정하는 실험 시설을 갖추고 분석을 본격화할 예정”이며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가축의 배출량이 차지하는 비율 등도 따지게될 것”이라고 부연했다고 한다.
강 박사는 또 “가축의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메탄 배출량을 줄이는 사료나 미생물 등도 연구 개발할 계획”이라고 덧붙여 교토의정서 발효를 계기로 축산연구소에 부여된 과제가 단순한 것이 아님을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세계 각국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 이에 따른 재앙을 깊이 인식하고 지구온난화의 주범들을 줄이기 위한 대책 강구에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투자와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시각이다.
일부 국가는 어떤 제품을 막론하고 환경친화적인 제품이 아니면 지구촌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보고 전 산업 분야에 걸쳐 대대적인 투자와 함께 노력을 경주, 이미 획기적인 친환경 제품을 선보이는 한편 지구온난화 주범들을 도태시킬 수 있는 기술과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가축분뇨처리 관리 강화와 악취방지법 발효 등이 겹쳐 심리적 부담감이 상당한 시점에 소의 트림과 방귀에 포함되는 메탄까지 신경을 써야하고 촉각을 곤두세워야할 상황을 맞게된 축산농가들의 심경은 착잡하다 못해 황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되새김질하는 가축의 트림과 방귀에 포함된 메탄 줄이기는 축산농가가 풀어야할 과제는 아니다. 전적으로 정부가 풀어야할 과제다. 사료를 비롯해 미생물 등 관련 업계가 떠 안고 고민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마땅히 선행해야할 연구나 투자, 노력을 하지 않고 소홀하고 방치해 뒀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부랴부랴 외국의 사례나 제도를 인용하고 내세워 졸속으로‘가축 방귀세’나 ‘가축 트림세’를 만들어 소에게 부과하는 황당한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현실화한다면 소들이 진짜로 웃음을 참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무관심하지는 말자.
축산연구소의 소 트림·방귀 메탄가스 감축 방안 연구와 기술 개발 노력에 많은 격려를 보내고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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