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협회의 일대 변신을 환영 한다
한우협회의 일대 변신을 환영 한다
  • 권민 기자
  • 승인 2019.11.2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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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한우협회는 지난달 20일부터 22일까지 제주특별자치도에서 개최된  한우지도자 역량강화교육 일정에서 ‘여성‧청년분과위원회’를 발족했다. 여성한우인과 청년한우인의 역할이 재조명됐다는 점에서 충분히 환영할만한 일이다. 
낙농의 경우처럼 이미 오래 전 정착돼 현재 낙농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사실 전국한우협회의 여성과 청년분과위원회는 진작 발족되었어도 늦은 감이 있었다.
지금 협회를 중심으로 한우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중추적 인물들의 연령대를 보면 대부분이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60대 중반 이상의 남성들이다. 20년 이상 30년 또는 평생을 불모의 현장에서 사양관리 기술을 스스로 습득해가며 온갖 시행착오를 몸으로 겪어오면서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쌓아온 사람들이다.
1999년 창립 이후 20년 동안 협회도, 여타 산업과 달리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호주산 생우 수입을 저지하고, 음식점 원산지표시제를 이끌어내고, 소고기 이력제 시행, 부산물 거래 관행 개선, 직거래 유통망 확보는 물론 출하예약제 개선까지, 오늘날 한우산업이 온전히 발전하게 된 데에는 이들의 땀과 눈물이 함께 어울러 있었던 것이다.

 

가부장적 사고 문제


그렇게 생존 투쟁에 매달리다보니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40대 중반 치고받으면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한우산업의 온전한 틀을 정립하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된 자부심은 어떤 의미에선 ‘옹고집’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생존 투쟁을 이유로 밖으로 돌던 이들이 온전히 농장을 경영하고 키울 수 있었던 바탕에는, 부재의 시간을 온전히 몸으로 때워주던 ‘안사람’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은 쉽게 각인되지 않았다. 여성의 희생이 당연시 되어 왔다는 말이다.
많은 여성들이 한우사육으로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지만 노력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다. 기껏 조합이나 지역의 생산자단체들이 행사를 치룰 때마다 먹을거리를 만들고, 손님을 접대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역할도 주어지지 않았다.
낙농의 경우엔, 여성 낙농인들이 주축이 되어 치즈공방을 만들고, 유제품의 고품질화 등 낙농산업의 핵심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여성한우인들 대부분은 남편을 따라 귀농을 했거나 한우에 대해 문외한에서 시작했다. 투병 중인 남편을 대신하거나, 사별한 후,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뛰어들어 현재 우수한우농가로 선정되어 이름을 알리고 있는 여성한우인도 크게 늘어났다.

 

육성기간 절대 필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자신도 대학에 입학에 조경을 공부했다”는 여성분과위원장에 선임된 김영자 한우협회 감사도 열성 한우인이다. 그는 스스로 농장을 가꾸면서 지켜본 주변 여성한우인들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현장 인터뷰에서 지역의 ‘헬퍼제도’를 활성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남성들이 여성을 핑계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과 달리 여성은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한우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는 여성의 역할을 온전히 살리기 위해서는 여성을 남성과 대등한 동지적 입장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으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들러리’에 불과하기에 그렇다.
평생을 한우물만 파온 한우인들의 가부장적 시각은 여성 홀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축산 대물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1세대의 완고함은 순탄하게 2세대로의 대물림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축산대학을 나와 축산업의 전반을 공부하고 가업을 물려받은 2세의 경우, 그 완고함에 밀려 좌절부터 배우는 것이 현장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접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환경 변화에 대한 미진한 대처는 일종의 고루함에서 나온다.
이러한 감정은 비단 한우산업에서만의 경우는 아니다. 일반적인 사회의 갈등구조에서 볼 수 있지만, 가부장적 태도가 완고한 한우산업에는 특히 그렇다.
지금은 ICT 접목에 성공해 노하우를 주변 농가에 소개하고 있는 전북의 한 2세농가는, 처음 부친에게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용접’이었다고 했다. 국내에서 알아주는 축산대학을 나와 축산관련 기업에 종사했던 자부심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기록관리도 전산화로 바꾸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한 동안 비효율적인 수작업에 의존해야 했고, “이렇게 바꾸면 어떠냐”는 의견 제시도 묵살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월급은 둘째고 “어차피 네가 물려받을 것인데…”라며 노예 부리듯 하는 일상에 아무리 부친이지만 너무하더라고 한탄했다.
지금 한우산업의 대물림은 흐름이다. 전남의 한 조합장은 한우산업의 후계자들 중 학벌이 뛰어난 2세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한다. 심지어 유학파도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우산업의 미래는 밝다.
하지만 정작 한우산업이 미래지향적이기 위해서는 여성과 청년이 온전히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인큐베이트 즉 육성기간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갈등의 기간을 최소화하려면 이들에게 많은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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