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퇴근하는 날 저녁 운동을 하겠다는 큰(?) 마음을 먹고 동네 시장에서 운동화를 한 켤레를 샀다. 한 번에 학교 운동장을 20바퀴 걷기를 일주일에 2~3일 했다.
한 달이 지났을까, 걷기가 불편해 운동화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멀쩡한데 갈수록 걷기가 불편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밑창을 들어봤다. 밑창이 완전히 갈라져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운동화를 신어봤지만 운동화 옆이 터지거나 닳았던 적은 있어도 밑창이 갈라져 본적이 없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신발가게에 가서 따졌다.
주인 왈 “어, 이거 본드로도 붙이기가 어렵겠는데요.” “그럼 바꿔주세요.” “얼마주고 사셨어요?” “만원이요.” 주인이 웃으며 말한다. “에이 그럼 중국산이네. 못 바꿔줘요.” 화가 나서 따졌다. “그럼 처음부터 국내산은 이만원이라고 말하셨어야죠.” 그날 실랑이를 하고 화가 나서 오는 길에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예전엔 미제(미국산)로 통칭되는 외국산이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알았다. 당시에 어떤 국내 기술도 허접스러웠기 때문이고, 특히 식료품의 경우엔 지금 중국에서나 있을 법한 불량식품이 판을 치던 때였다.
한국의 세운상가와 같이 전자제품을 전문으로 파는 일본의 아키하바라를 방문했을 때다. 20년 전의 일이다. 같은 회사의 카메라인데 가격이 달랐다. 같이 간 동료는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대뜸 돈을 지불했다.

 

자국산의 신뢰 중요


물건을 파는 상인이 모르고 가격을 이상하게 책정한 것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모양도 똑같고 기능도 같은데, 자세히 보니 비싼 것은 국내에서 만든 것이고, 그보다 싼 것은 해외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었다.
10여년 전 일본의 공진회에 참가했을 때다. 당시 일본은 광우병으로 몸살을 앓았던 때라 와규협회 관계자에게 “와규산업이 큰 타격을 받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오히려 소비가 늘었다”며 “국내 소비자들이 외국산보다 국내산에 더 많은 신뢰를 갖고 있는 결과”란다.
자국산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 신뢰를 지키기 위한 정부와 생산자들과 유통업자들의 노력이 보여준 결과다. 사람이 사는 사회가 온전히 유지되고 발전해 지속가능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신뢰다.
한우곰탕집을 들어가 곰탕 한 그릇을 시켰다. 8000원의 가격에 비해 고기가 푸짐했다. 여기저기 손님으로 시끌벅적이다. 처음엔 ‘착한’ 식당이려니 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곰탕에 들어가 있는 고기 한 점을 먹으면서 깨졌다.
그제서야 메뉴판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오호, 국물이 한우를 우려낸 것이고 고기는 미국산이구먼.” 그래도 손님들은 푸짐한 고기에 만족하는 모습이다. 한우를 자주 접하지 못하는 우리네 서민들은 ‘소’고기에 마냥 만족해 한다.
그러니 이렇게 소비자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하고도 식당은 번창하다. 둔갑판매의 수법은 나날이 발전해 이전의 ‘통째 둔갑’은 이미 순진한 단계다. 삼겹살‧목살용 돼지고기와 국거리용 소고기 등 소비자들이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부위만 골라 속이는 ‘버무리기’ 수법이 만연된지 오래다.
지난 17일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가 발표한 ‘원산지 표시 실태조사’의 결과도 그것을 잘 보여준다. 원산지표시제도를 악용해 소비자를 혼동케 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2개 이상의 원산지임에도 섞음을 표시하지 않고 비율을 알 수 없도록 표기하거나 메뉴판에 교묘하게 수입육 원산지를 작게 표시하는 등의 수법이다.
사람들이 불법을 저지르는 심리는, 불법을 통해 얻는 이익이 법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발이 되었을 경우 얻은 이익이 몰수되고 게다가 위반에 대한 벌금까지 더해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 여기게 하는 것이다.

 

더욱 교묘해진 상술


외국산을 국내산으로 둔갑 판매하면 수입 가격에 비해 서너 배의 시세 차익을 손쉽게 챙길 수 있고, 걸리더라도 얻은 이익에서 적은 액수만 내면 되니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이 실태조사 결과를 놓고 전국한우협회는 탕류 육수는 한우를 활용해 육수의 원산지인 한우만을 강조하고 고기는 수입육을 제공하는 기만적 표시가 적발돼 ‘충격’을 줬다고 하지만 이미 많은 식당 등이 해오던 짓이다.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중 처벌 조항을 보면 원산지를 거짓‧혼동 또는 위장 표시에 대해서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 2년 이내 2회 이상 적발 시 위반 판매금액의 5배 최고 3억 원까지 과징금을 물린다.
최근 정부는 거짓 표시 신고 포상금을 최고 2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미표시 신고는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원산지 표시에 대한 민간 자율적인 감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전에도 그랬다. 하지만 처벌 수준이 ‘솜방망이’이거나 심지어 생계형 범죄로 취급하는 등 이해도가 낮아 상습적으로 위반하는 사례가 줄지 않고 있다. 더 교묘해질 뿐이다. 원산지 표시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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