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 3일, 식품업계를 뒤흔든 일대 사건이 터졌다. 바로 ‘라면 우지 파동사건’이다. 이날 “공업용 우지(소 기름)로 면을 튀겼다”는 익명의 투서가 서울지방검찰청에 날아들면서 시작됐다.
이에 따라 서울지방검찰청은 미국에서 비식용 우지를 수입한 삼양식품, 오뚜기 식품, 서울하인즈, 삼립유지, 부산유지 등 5개 업체를 적발하고 대표 및 실무 책임자 등 10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입건했다.
검찰이 밝힌 위법 사항은 이들이 라면을 튀기거나 쇼트닝, 마가린을 만드는 데 쓰이는 정제 쇠기름의 원료로 미국에서 수입해온 2등급 및 3등급 등 비식용 우지를 썼다는 점이다. 이들이 썼던 우지가 1989년부터 개정된 식품공전 중 원료 조항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당시 개정된 식품공전에는 1988년까지 완제품 단계에서만 규제하던 것을 1989년부터는 원료단계부터 규제하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검찰의 사법처리에 대해 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특히 삼양식품 측은 “우지를 써서 라면으로 제조해온 건 20년 전부터다. 국민에게 동물성 지방분을 보급한다는 취지에서 우지를 수입하고 정제해 식용 우지로 사용할 것을 정부에서 권장하고 추천했기에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무지가 부른 결과물


또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우지의 수입 과정이나 정제해 식용 유지로 쓰였다는 점에 있어서 식품위생법상 제반 검사에 적격한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특히 “1989년 우지 수입단가가 팜유 수입단가보다 톤당 100달러가 비싼데도 불구하고 우지를 썼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우지의 원산지인 미국에서는 사실 자신들이 먹지 않으므로 ‘비식용, 즉 공업용’이라는 논리로 공업용 딱지를 붙였던 것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내장과 사골도 당연하게 식용으로 소비되고 있으므로 한국 기준에서는 공업용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3등급짜리 우지까지는 식용으로 쓰며 그 이하는 한국에서도 공업용이었다. 1등급 우지는 날 것으로 먹어도 될 정도로 매우 안전하며, 2~3등급 우지는 지금도 튀김용 등으로 잘만 사용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축산물 분류 기준을 ‘억지 춘향’식으로 재해석하고 삼양식품 등에 있지도 않은 누명을 씌워버린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 팜유를 쓰던 농심이 다른 라면 회사를 다 날려버리고 완벽한 왕좌를 노렸다거나, 정치계와 손잡은 농심그룹의 공작이라는 설이 이때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국민들 대다수가 2차 산업 현장에서 일을 하며 온갖 종류의 유해물질에 시달리던 시기였고, 특히 1980년대에는 이타이이타이병 사태, 수원의 미나마타병 집단 발병 등으로 온 국민이 유해물질 중독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런 시점에서 “라면에 공업용 기름을 썼다”는 소문 하나 만으로도 내면의 두려움이 한꺼번에 터지는 기폭제가 됐다.

 

인식 바꾸기 힘들어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등 소비자단체가 포문을 열었다. 해당업계의 사과와 제품의 전량 수거, 유통업자들의 해당 제품에 대한 진열 판매 중지,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본건사회부의 항구적 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언론들은 검찰 발표 후 심층 취재나 분석 식의 융단폭격을 가해 마치 공업용 기름으로 라면이나 마가린 같은 유지 식품을 제조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미국, 일본, 동남아 등지의 언론들도 한국 언론의 보도를 퍼다 날라 대서특필함으로써 한국산 라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는 같은 해 8월 말까지 라면 341건을 수거했지만 식품공전 규격에 어긋나는 제품은 단 한 건도 없다고 밝혔다. 정부‧검찰‧소비자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8인 식품위생검사 소위원회가 구성돼 조사에 나섰지만 이상이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구속된 업체 대표 10명은 보사부 무해 발표를 근거로 보석으로 풀려났다. 세월이 흘러 5년 8개월의 소송을 거쳐 대법원에서 전부 무죄 판결을 받고 사건은 완전 종결됐다.
어떤 의미에서 이 사건은 ‘악의적’이지만 마케팅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마케팅은 ‘인식’의 싸움이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 속에 한 번 뿌리박힌 인식은 왠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이 사건 이후의 라면 판도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후발주자였던 농심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 1980년대 중반 마침내 부동의 1위로 안주해 왔던 삼양라면을 따라잡았다.
하지만 우지 파동 이후 시장점유율 면에서 농심과 삼양라면은 58:19.9%로 거의 3배 가까운 차이를 보이게 됐다. 삼양라면은 8년에 걸친 재판에서 결백을 입증했지만 회사는 만신창이가 됐다. ‘악의적’이라는 데에는 정치와 연결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마케팅과는 무관하다. 
축산업에 오염산업이라는 ‘프레임’이 씌어졌다. 이 프레임은 최근 몇 년 동안 환경과 관련된 모든 정책에서 축산업을 옭죄는 것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케팅은 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학계든 단체든 자신들을 어떻게 알리느냐에 따라 발전할 수 있느냐 퇴보하느냐가 달려있다. “왜 마케팅이 필요하냐고?” 이처럼 우문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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