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기간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황윤 씨가 쓴 「사랑할까, 먹을까」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는 청와대 대변인의 대답을 듣고 곧바로 ‘아이고’ 소리가 나왔다.
황윤 감독의 이 책은 공장형 축산에 대한 문제점을 다룬 책이고, 2015년 제6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적이 있는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의 내용이다. 대통령이 연초부터 이 책에 관심을 보이니 당장 2019년에는 ‘동물복지’에 대한 광풍이 불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독서평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공장형 사육을 농장형 사육으로 바꿔야 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고 했다고 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 축산업의 패턴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한마디에 ‘존명’을 외치는 사람들에겐 속도가 문제다. 자연스럽게 산업의 흐름에 따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차근차근 진행해 가면 될 일이다. 그들에겐 차근차근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이 문제다.

 

‘차근 차근’ 성에 안차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고 윤리적 접근을 강조하는 서양의 경우,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윤리적 소비에 눈을 뜬 시민들의 동참이 자연스럽게 그나마 조금 나은 동물복지를 이뤄냈다. 하지만 우리는 또 ‘속도전’이다. 압축성장의 기억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황윤 감독이 말했듯,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의 목적은 단순히  ‘돈가스 마니아’인 아들과 남편이 ‘밥상의 돼지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역으로 추적해 보는 것이었다.
그는 아마도 제작 준비과정에서 국내에서는 참고할 만한 서적이 없어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니,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니 피터 싱어의 「죽음의 밥상」을 비롯 다수의 축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학자들이나 식량과 관련한 많은 서양의 저서들을 참고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황윤 감독의 결론은 조심스럽다. 육식을 끊은 지 2년 째 쯤 다시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유혹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그 후 다시 육식을 끊었지만 아들과 남편은 결코 육식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황 감독이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지난 3월 14일 개최한 제1회 농촌현장 창업보육 집담회에 초청돼 “육류 생산에 문제가 많다”며 “축산업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암적인 존재”라고 했다니 귀를 의심했다.
무엇이 그를 극단적으로 몰고 간 것일까? 아니면 애당초 그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적인 나열에 불과


최근엔 축산과 관련 SNS 상에서는 한 맛 칼럼리스트의 ‘독설(毒舌)’로 시끄럽다. 본인은 근거 있는 말이라고 하지만 듣는 이는 그 근거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 종편의 인기프로에서 한국의 양돈산업이 일본자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했다. 돈가스용 등심과 안심이 수출되는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먹지 않는 삼겹살을 우리 민족이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돼지고기는 먹고 싶은 데, ‘분뇨처리’ 문제가 심각하니 자국에서 돼지를 키우는 대신 한국에서 키우기로 결정했다는 데, 일본의 누가 언제 그렇게 결정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참 애매모호하다.
여기서 끝난 것도 아니다. 햄버거를 먹는 어린이가 신장 손상 등을 일으키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일명 햄버거병)에 걸렸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햄버거 공포증이 퍼지고 있던 2017년 7월에는 햄버거 병이 아니라 ‘소고기 병’이라고 해서 또 한 번 소동이 일었다.
당초 그는 전국의 맛 집을 찾아다니며 당시에는 참신하고 날카로운(?) 비평을 해오며 이름을 조금씩 알렸다. 그의 팬들이 조금씩 늘었다. 거침없는 그의 평은 더 거침이 없어졌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평가할 땐 그에 합당한 논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패스트 푸드는 쓰레기 음식이고 슬로푸드는 좋은 음식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로는 너무 옹색하다.
그는 “햄버거병이라는 이름을 통해 그것이 좋은 음식이 아니라 사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패스트푸드라는 싸구려 행복 이면에 도사린 인간 중심주의, 동물 학대, 노동 착취, 환경과 생명을 외면하고 무한 이윤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 손쉬운 만족을 탐닉하는 우리의 욕심과 어리석음을 상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또 언젠가 “농업도 자연을 착취하는 행위”라고 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참으로 유식한 말 같은 데, 따지고 보면 온갖 미사여구만 갖다 붙였을 뿐이지 본인의 사상으로 만들어지지 못한 지적 나열일 뿐이다.
앞선 저자들의 지식은 직접 소를 사서 사육과정과 도축 그리고 유통되는 과정을 일일이 관찰했거나, 수십 년을 그 분야를 관통하면서 쌓은 것이다. 그래서 객관적 사실을 받아들여 자신의 주관을 정립한 사람들이다.
주관적 관점으로 똘똘 뭉친 본인의 독설에 대한 반박을, 오히려 ‘가짜뉴스’로 폄훼하는 것은 체계화된 지적 논리를 갖지 못한 이들의 상투적인 행태다.
이러한 사람은 설득되지 않는다.  권위 있는 사람의 한마디가 더 효과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들은 권력엔 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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