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난각 산란일자 표기는 예정대로 지난달 23일 시행됐다. 식용란 선별포장업도 4월 25일 시행될 예정이다.
단 대한양계협회 등 생산자단체와의 협의를 거쳐 유통과정의 온도관리를 강화하고 부적합한 계란의 유통 차단을 위해 GP(Grand Packing, 집하장)를 통한 상시검사체계를 갖추기로 했다. 농가 등 생산현장이나 유통업계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기간을 고려해 시행 후 6개월의 계도기간을 두고, 개선이 필요한 경우 보완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또 식용란 선별포장업과 관련해서는 단체들이 주장하는 유예기간이 아닌 계도기간을 1년으로 정하고 계란유통센터의 설립도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한양계협회를 비롯 생산자단체들은 ‘계란 난각의 산란일자 표기 철회와 식용란 선별포장업 유예를 위한 투쟁’ 천막농성을 70일 만에 종료했다.
당초 생산자단체들은 “산란일자 표기와 식용란 선별포장업이 계란산업과 생산농가에게 많은 피해를 줄 뿐 소비자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안전하고 신선한 계란의 유통을 방해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러면 이번 합의는 성공한 걸까? 김현권‧윤일규 의원은 국회 차원의 TF를 구성하겠다고 합의했다. 농식품부와 식약처는 광역 GP추진을 합의하고, 농식품부 주관의 유통구조개선 TF를 통해 이어가기로 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향후 문제점을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대한양계협회는 천막농성을 끝내며 “전국에서 모여든 양계농가의 투쟁의지는 ‘정의는 승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정말 생산자단체들이 원하는 대로 합의가 이뤄졌는지, ‘승리’라고 말할 만큼의 만족할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천막농성 시작과 종료 사이에서 보여준 소비자단체의 행태는 이후에도 소비자는 농가들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정의는 승리했을까?

 

양계농가들의 생존을 건 천막농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던 지난달 15일 소비자시민모임은 각 언론사에 ‘소비자 10명 중 9명은 산란일자 표시 시행에 찬성’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농가들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이다.
소비자시민모임은 2월 1일부터 8일까지 20~60대까지의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산란일자를 표시해야 한다는 응답률이 90.2%라고 했다.
그 이유로는 ‘계란의 신선도를 아는데 도움이 되어서’고, 응답자 중 83%는 계란 품질과 관련한 불만을 경험한 적이 었었고, 불만 내용은 ‘신선도’가 69.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했다.
왜 그 시점에서였을까? 생산농가의 반발에 대한 소비자의 입장이라곤 하지만 이 또한 생산농가들, 아니면 축산농가들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누구든 소비자의 입장이라면 10명 중 1명이 아니라 10명 중 10명이 산란일자 표기를 찬성할 것이다. 정확히 산란일이 기록된 것이 신선함이나 위생이나 안전함에서 보장된 것이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생산농가들과 전문가들이 안전성과 위생을 보장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데, 그것에 관계없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라고 툭 던지는 것은 ‘갑질’에 다름이 아니다.
소비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에 있는 부류가 아니고, 따로 구분되는 계층도 아니다. 물건을 구매하는 주체일 따름이다. 때문에 생산자도 물건을 구매할 때는 소비자가 되고, 소비자도 생산에 참여하는 순간엔 생산자가 되기에 그렇다. 마치 어떤 특정 부류로 생각하는 자체가 착각이다.  

 

소비자 ‘갑질’ 그만

 

계란에는 이미 생산자의 고유번호와 사육환경 번호 표시가 각각 2018년 4월과 8월부터 의무화되어 있는데, 이를 알고 있는 응답자가 23.2%에 불과하는 등 있는 번호도 확인해 구매 시 활용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숫자가 더 늘어나면 더 복잡해질 것은 자명하다.
설문조사를 ‘산란일자 표기를 해야 하느냐 그렇지 않으냐’로 물어보면 10명 중 9명이 아니라 모두 그래야 한다고 할 것이다. 9명도 적은 숫자라는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더 이상 ‘소비자는 왕’이라는 천박한 소비자 자본주의의 모토는 없다. <2017년 9~10월 가락골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다」 참조> 생산농가의 상황에 대해 모른 척하면서 소비자의 권리만을 찾는 ‘저열성’은, 블랙컨슈머와 다름이 아니기에 그렇다.
만일 난각 산란일자 표기와 식용란 선별포장업이 시행되면서 당초 정부가 약속한 안전과 위생의 확보는 둘째치고, 생산농가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그만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면 설문조사에 응한 소비자들의 생각도 좀 더 깊어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 내가 부담 없이 구매해온 계란의 생산과 유통과정이 이런 것이었어?”라는 이해가 깊어지면 내가 지불하는 가격의 가치도 함께 고민하게 된다. 설문조사에는 이런 것들이 빠져 있기에 ‘갑질’이라고 하는 것이다.
공정무역이라거나 윤리적 소비라는 말은 소비자 자본주의가 얼마나 시장을 왜곡하고 있느냐를 꾸짖는 개념이다. 생산자가 소비자를 생각하며 생산에 임하듯이 소비자 역시 생산자를 생각해야 ‘상생’이라는 공동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기에 그렇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