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껍데기에 산란일자 표시하기’에 식약처가 내세우는 명분은 ‘소비자의 알권리’다.
소비자라는 이름만 붙이면 어떤 정책이든 통용된다는 말인데, 계란 하나에 줄줄이 찍혀 있는 코드를 읽고 “음 신선하군”하며 사서 먹는 일반 소비자들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살 때마다 산란일이 언제고, 어느 농장에서 어떤 사육환경에서 생산된 것인지, 마치 암호 같이 되어 있는 코드를 읽는 방법을 모르면 대체 무슨 수로 알아낸단 말인가.
소비자의 권리란 1960년대 국가의 적극적인 소비자보호정책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의회에 대한 「소비자의 이익보호에 관한 특별교서」를 통해 4가지 권리를 천명한 것에서 비롯됐다.

 

농가가 부도덕한가?

 

시장경제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판매자 측의 권리에 대해, 소비자 측의 권리가 균형 있게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별교서에서 지적한 소비자의 권리는 안전의 권리, 알 권리, 선택할 권리, 의결을 반영시킬 권리 등 4가지이고, 식약처가 내세운 알권리는 바로 이 중 하나다.  
그 알 권리가 바로 ‘소비자가 사기 또는 기만적이거나 심하게 오도된 정보‧광고‧표시 및 이와 유사한 상관습으로부터 보호되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에서 권유하는 대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해도 자신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보호받는 권리’를 말한다.
소비자의 알 권리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면 지금 양계농가들이 알 권리가 부당하다고 저항하는 것인가? 그동안 위생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계란을 생산해 왔는데, 왜 이제와서 그것을 밝히느냐고 우기는 것인가?
양계농가들의 한 달을 넘어 두 달째 접어드는 천막 농성이 소비자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부도덕’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양계인들의 이 행위는 마땅히 비난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과연 그런가?
소비자의 알 권리를 앞세운 산란일 표기를 두고 전문가들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시행’이라고 강하게 반발한다.

 

피해는 누가 볼까?

 

살충제 계란 등 계란 위생과 안전에 관한 문제는 후진적인 계란 유통구조가 근본 원인인데, 이 문제는 외면한 채 산란일 표기나 선별포장업 신설 등 변죽만 울린다는 지적이다. 공무원들의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말이다.
이미 계란 껍데기에는 5자리의 농장 고유번호와 1자리의 사육환경이 표기되고 있다. 하지만 오는 23일부터는 여기에 4자리의 산란일 표시를 더 해야 한다. 몇 월 며칠을 적어 넣어야 하되, 산란시점으로부터 36시간 이내 채집한 경우에는 채집한 날을 산란일로 표시할 수도 있단다.
지금도 소비자들은 계란에 덕지덕지 새겨진 암호를 어떻게 읽어낼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산란일자를 붙이게 되면 앞의 것은 접어둔 채 뒤의 것만으로 계란의 신선도를 판단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산란일이 며칠 지난 것은 덜 신선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계란의 권장 유통기한은 30일이다. 냉장 상태에선 40일 이상을 보관하고 먹어도 된다. 산란일 표기는 최근의 계란을 골라 사는 현상을 초래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소비자가 산란일자를 확인하려면 계란 포장지를 뜯어 계란을 돌려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오염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다.
특별히 고민해서 알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시행되면 뻔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식약처만 모르고 있다면 그건 소비자의 알권리가 아니라 그것을 빙자한 탁상행정이다. 파생되는 문제를 알면서 밀어붙인다는 것은 엄연한 직무유기다.
또 다시 향후 발생할지도 모를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 미리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식약처의 ‘노림수’다.
“감히 세계 어느 나라도 계란 산란일자 표기를 의무화하지 못했는데 우리는 했다. 얼마나 대단한가? 세계 최초로 선진제도를 도입했다. 하하하.”
국회에서조차 잘못된 정책이라고 농민들의 입장에 뜻을 실어주고 있는데, 아직도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 빠져 왜 세계 어느 나라도 의무화하지 않는지를 돌아보지 않는다.
김현권 국회의원은 위생과 안전의 대책을 산란일자 표기로 해결하려는 식약처의 저 무식함에 대해 “국내 계란 안전의 핵심 문제는 축산 선진국들과 달리 세균 오염과 품질 하락을 막기 위한 유통‧보관 온도 기준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라고 해답을 내놓는다.
김 의원은 국회입법조사처가 제출한 ‘한국과 세계 주요국의 식품 및 축산물 유통과 안전기준 비교자료’를 통해, 계란 오염을 줄이기 위해 농장에서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이고 일정한 냉장 유통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못한 일부 업자들로 인해 계란의 표면 결로와 같은 위생‧품질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니 양계농가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식약처가 후진적 계란 유통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숨기고, 앞으로의 책임회피에 급급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잘못된 정책은 시행되면 예상했던 그 이상으로 피해가 막대하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온전히 생산자와 소비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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