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여 차례에 걸쳐  「농협, 21세기를 허(許)하라」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요지는 지금의 농업 협동조합이 혁신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얽매인 이념보다 미래지향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매년 농협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지적하는 내용은 매번 똑같다. 변화됐다는 말도 없고, 자신의 질의 시간 몇 분만 떼우는 식이다. 전문성이 결여된 데다, 관심이 별로 없다. 지적하지 않는 것이 농협을 도와주는 줄 안다.

 

유명 강사 급 대우


게다가 올해 국감에선 중앙회장에 대한 ‘칭찬 일색’에, 사석에선 “한 번 더 하라”다. 왜 매년 지적되는 상황이 반복되느냐에 대한 강한 질타는 한 두 명이 의원뿐이다. 「국감을 통해 본 농협」은 특별한 사항도 아니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농협의 실태다.
김병원 중앙회장은 취임 이후 줄곧 협동조합의 이념을 강조하면서 전국을 돌며 강의해 왔다. 그리고 현장에서 농협 관계자나 조합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유명 강사와 같은 대접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유창한 말과 화려한 코디, 청중을 사로잡는 매너는 최상급이다.
농민 조합원 특히 여성 조합원들로부터의 인기는 상상 불허다. 하지만 정작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으면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단다. 자리 배치에서부터 움직임과 제스츄어 등 동선까지 강연 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현장의 코디는 탄성을 자아낼만하다.  
1929년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부장이 된 후 새로운 선전수단을 구사하고 교묘한 선동정치를 해 1930년대 당세 확장에 크게 기여한 파울 괴벨스도 고개를 끄덕일만 하다.
그러나 하나 알아둘 것은 괴벨스는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자, 문화면을 완전히 통제하고 국민을 전쟁에 동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전국 순회강연과 중앙회뿐만 아니라 일선조합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이념교육과 강연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듯 하다. 협동조합 본연의 목적보다 개인이 더 부각됐기에 그렇다.
이념을 중시한 독단이 전제된 전체주의국가에서는 결국 고통 받는 사람은 국민들이다. 마오쩌둥이 그랬고, 히틀러가, 스탈린이 가장 좋은 예다. 국민들 앞에서 부르짖는 외침이 아무리 감동적이어도 결말은 그랬다.     
지역 국회의원을 구워삶기 위해 휘둘리고, 농림축산식품부의 공무원들로부터 하부조직원으로 대우받으면서도 굳굳(?)하게 그리고 당연(?)한 자세를 취하는 임원들을 대하면서 직원들에게 각자의 할 일과 역할을 따지는 것은 모순이다. 
줄곧 주장해왔지만 이념이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면 민주주의만이 살아남지 않았다. 중앙회와 소수의 일선조합장들로 행보가 결정되는 중앙회의 경영은, 결과적으로 대다수의 일선조합과 직원들이 배제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유기적 시스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주인은 농민’이라는 이념은 정확한 의미에서는 잘못된 말이다. 협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그러나 농협의 역할이 중요했던 만큼 농협이라는 창구를 통해 대한민국 농업의 발전에 앞장서 달라며 정부가 각종 지원을 일원화했을 뿐이다.

 

새 시대엔 새 방식이


정부와 농민의 요구대로 농협은 대한민국 농업의 발전과 그 뒤안길에서 힘겨워했던 농민들과 함께 울며 웃으며 고락을 함께해 왔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것은 훼손되어서는 안되는 지나온 농협의 성과다.
‘일의 미래와 기업 간의 협력’이라는 주제로 기업 컨설팅을 해오고 있는 미국의 저명한 기업 컨설턴트 제이콥 모건은 저서 「다가올 미래」에서 현대 사회는 인류사상 처음으로 다섯 세대가 한 곳에 모여 일하는 진귀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1946년 이전 출생인 전통주의 세대, 1946~1964년의 베이비 부머 세대, 1965~1976년 X세대, 1977~1997년 밀레니얼 세대, 1997년 이후 출생인 Z세대가 그가 말하는 다섯 세대다.
미국 노동통계국의 분석에 따르면 향후 몇 년 후엔 밀레니얼과 Z세대가 인력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될 것이며, 2020년까지 밀레니얼 세대가 전체 인력의 약 75%에 달할 것이다. 국내의 모든 기업도 마찬가지의 연령대 구조다.
전통을 따르고, 베이비 붐 시대에 출생한 세대들은 최근의 흐름에서 그 이후의 세대들인 X‧밀레니얼‧Z 세대가 주도해 가는 향후를 걱정하며, 그 때문에 어쩌면 협동조합의 이념을 더 조급하게 강요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항상 앞 세대는 뒷 세대를 ‘철이 없다’는 식으로 걱정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결코 정체되거나 퇴보한 적이 없다. 뒷 세대가 앞 세대를 밀어내고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의식을 만들어왔기에 그렇다.
이러한 인구통계학적 분석은 직원들의 업무방식과 관리자들의 리드 방식, 기업의 구조와 운영체계 등이 이전과는 크게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미래를 내다보는 현재의 바람직한 경영이다.
이미 전통주의 세대와 베이비부머세대의 시대는 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저항하면서 그 시대를 강요하는 것은, 아무리  ‘조직 발전을 위해서’라고 슬로건을 내세운다고 해도 주류가 될 수는 없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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