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지방을 돌며 지역 농‧축협을 탐방할 때의 일이다. 광역시에 위치한 농협을 찾았다. 5층 건물 중 4층에 부서들이 몰려 있었는데, 한 쪽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조합장에게 무슨 공사냐 물었더니 화장실을 보수한다고 했다. “쓸 만한 데요?”했더니, 얼굴을 쓱 보더니 “비데를 설치하려고 한다”고 했다. 지금은 비데가 보편화됐지만 그때는 좀 낯설었다.
그 조합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전체 공사하는  데 드는 비용이 천만 원 단위”라고 덧붙이면서 웃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의 설명이 뒤따랐고, 그의 ‘관리자론(論)’으로 인해 조합 경영이란, 무조건 조합원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툭하면 직원들 질타

그의 관리자론은 이렇다. 물론 목적은 조합원의 소득 향상이고 복지 증진이다. 그러나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인데, 그 수단은 조합장과 임직원들이라는 것이다.
조합원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조합원의 행복도 없다는 뜻이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웃는 낯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상냥한 말투로 고객과 조합원들을 대하면 조합원들이 조합을 마치 편안한 휴게소나 푸른 정자와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조합의 수익 전부를 조합원들에게 환원한다는 뜻은 좋지만, 수익 배분에서 직원들이 배제된다면 지속적인 성장은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이 그 조합장의 관리자론이었다.
지난 농협국감에서 정운천 의원은 “농민 수는 줄어드는데 농협 임직원의 수는 늘어났다”면서 “농촌이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협이 농협만을 위한 조직이 되어가고 있다”고 질타했다.
농가인구는 1980년 1082만명에서 2017년 239만명으로 30년 만에 무려 5분의 1로 감소했고, 회원조합 숫자도 현재 1123개로 동기간 362곳이 사라졌다. 반면 농민을 위한 조직인 농협 임직원은 같은 기간 3만7511명에서 10만3413명으로 무려 2.7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농협이 농가소득 5000만원 달성이라는 허울 좋은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농가수취가격을 높이고 농자재 가격을 낮추는 등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대책을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협이 협동조합으로서의 구실을 못한다는 정 의원의 말에는 백번 동의하지만 숫자의 개념으로 농협이 농협만의 조직이라는 것은 단순한 사고방식이다. 농협의 사업이 다양화되고 그에 맞는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직원이 필요하다.
또 농가의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농축산업의 규모가 그에 비례해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은, 규모가 전기업화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게다가 농자재 가격을 낮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농협의 역할 부실론을 제기하는 것도 뭔가 잘못된 지적일 듯 싶다.
농협중앙회가 협동조합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심지어 ‘돈 장사’에 치중한다는 ‘조롱’섞이 말을 듣는 것은 중앙회 직원들의 탓이라기보다 이들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몇몇 임원들과 조합장들의 탓이 크다.
전국한우협회가 ‘농협 적폐’를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은 직원들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사회에서 결정한 ‘중앙회장 셀프 전관예우’로부터 촉발된 것이다. 물론 시급히 철회하긴 했지만 이사조합장들과 농축산관련 사외이사들의 이날 결정은 지금 중앙회의 존재감이 어떤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조합장에 인사 청탁

MB 정권 때 중앙회장을 조합장 직선제에서 대의원이 선출하게 만든 것을, 일부에서는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때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출한 ‘통일주체국민회의’와 빗댔다. 여러 가지 구실이 붙여졌지만 결과적으로 농민들을 위한 중앙회로 전환됐을까?
중앙회 이사가 되면 월 400만원의 수당을 받고 그 외 알게 모르게 각종 혜택을 누린다. 대의원 역시 그에 맞는 대우를 받는다. 때문에 일선조합장은 이사나 대의원이 되고 싶어 하고, 중앙회와 협력(?)이 잘 되는 조합장은, 나름대로의 심사를 거친 조합장과 함께 그 자리에 앉는다.  
이러한 조합장들이 중앙회와 일선조합 간의 협력을 통해 전체 농협의 발전과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는가? 그에 대한 답변이 현재도 끊임없이 개혁을 요구받는 농협의 입장이다.
선출직의 중앙회장이나 축산경제대표는 표를 가진 조합장의 행사에 참여하느라 정신이 없다. 수없이 많은 요구와 요청에 시달린다.
차기를 노린다면 터무니없는 주장에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인사 역시 직언을 하는 직원보다 고분고분한 직원을 선택한다. 그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 인사철이 되면 조합장을 통한 청탁이 들어오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니, 직원들은 그런 의미에서 조합장을 섬긴다.
내부에서는 전혀 고칠 수 없는 이러한 인사시스템을 지적하는 의원은 없다. 그러니 정치적으로 농자재 가격을 낮추는 것으로 외부의 개혁요구를 무마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농협이 농민의 것이니 막연히 개혁해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집적거리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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