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 「1984」를 통해 ‘빅 브라더’가 통치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국가가 통치한다고 했다. 과거의 모든 기록을 수시로 삭제하고 조작한다. 정부기관을 진리부, 평화부, 애정(愛情)부, 풍부(豊富)부 네 개 부서로 나누는 데, 이는 하는 일과 정반대다.

진리부는 보도·연예·교육·예술을, 평화부는 전쟁을, 애정부는 법과 질서를, 풍부부는 경제 문제를 책임진다. 당은 기존의 언어대신 ‘신어’를 만든다. 이 신조어는 ‘좋은’의 반대는 ‘나쁜’이 아니라 ‘안 좋은’으로 바꾸는 것과 같이 단순화해 점차 이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못하도록 한다. 이것이 오웰식 언어라고 불리는 ‘이중 화법’이다.

 

‘개선대책’ 속은 부정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불경기나 경기 후퇴라는 말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니까, 이를 ‘경기 순환’ 또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실업’은 ‘미고용’, ‘증세’는 ‘세입 증대책’, ‘가격 인상’은 ‘가격 현실화’로 바꾼다. 시민들이 체감하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모호하거나 모순된 표현을 사용한다. 다분히 의도가 있다는 말이다.

무허가 축사 적법화의 처음 용어는 무허가 축사 개선(양성화)대책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어느 순간부터 ‘적법화’라고 용어를 정리했다. 굳이 왜 양성화를 적법화로 정리한 걸까?

양성화(陽性化)는 숨겨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은 것을 겉으로 드러내게 한다는 뜻이다. 적법(適法)이란 정해진 법규에 맞음을 의미하며, 적법화란 법규에 맞추기 위해, 권리의 실질적인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 택하여야 할 수단·기술적 방법을 거치는 과정이다.

양성화를 전제로 한 무허가 축사 개선대책에서 왜 적법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일까? 정부가 ‘개선대책’이라고는 했지만, 속 내용은 축산업에 대한 강한 부정적 사고가 전제되어 있었음을 암시한다.

양성의 반의어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음성(陰性)이다. 그러나 적법의 반의어는 법이나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는 위법(違法)이다. 따라서 그동안 축산농가들은 무허가라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동안엔 묵과해줬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강한 단속의 의미이다.

이에 맞서 두 달 남짓 남은 시점에서 축산인들은 무허가가 아니라 미신고 또는 미허가라고 용어 바꾸기에 나섰다. 때늦은 대응이다. 교묘한(?) 정부의 의도를 알기까지 축산인들은 순진했다. 이제 와서 미신고 미허가라 한들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스쳐가는 요식 행위

지난 19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미(未)허가 축사 구제방안은?’이라는 주제로 토론회에 참석한 농축산부·환경부·국토교통부 관계자들의 반응을 보면, 축산인들이 무엇이라 부르든 현장에 대한 몰이해는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그들의 답변을 들어보면 토론회가 단지 스쳐지나가는 요식행위이거나, 높아진 축산농가들의 불만을 잠시 받아주기만 하면 되는 자리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특히 농축산부 관계자는 축단협의 토론자나 현장의 축산농가의 질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잠시 참석자들의 야유를 사기도 했다.

축산관련단체장들은 “지난해 AI 발생 시 계란값이 80~90% 급등했고, 2011년 FMD 발생 때는 돼지가격이 두 배 이상 폭등해 서민경제를 위협하고 국민들이 고통 받았던 것을 기억하라”고 축산물 생산기반 붕괴는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지만, 축산인들은 다른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정부가 국민들의 세금으로 계란을 수입하고, 돼지고기를 무관세로 들여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축단협의 성명처럼 ‘농촌지역 지자체의 총 생산액 중 약 60%가 축산업의 생산액이고, 축산업의 붕괴가 곧 농업농촌 붕괴로 이어져 대한민국 농업의 폐업선언과 다름없다’는 거창한(?) 주장이, 지금 정부에게는 단지 ‘푸념’으로 들리겠지만 10만여 농가의 대다수가 포함된 적법화의 여파가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좌절감을 준다는 점만큼은 명심해야 한다. 그게 정부와 공무원이 가져야 할 제일의 덕목이다.

 

수십억 보상이라니

‘환경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추진되고 있는 적법화가, 의미를 확대해 아예 축산업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진행과정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부드럽게 말할 게재가 아니다.

적법화에는 정부에서 요구하는 ‘정당하게’ 생업에 종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축산농가들이 5000여 농가에 달한다고 한다. 여기에 축사를 쪼개고 남은 곳에 또 설비를 설치해야 하는 농가들까지 합치면 부지기수다. 벌판에서 축사를 짓고 지금껏 수십 년을 축산업에 종사하면서 투자해 환경친화적 농장으로 거듭난 농가들마저 눈앞으로 다가온 마감날짜에 한숨이다.

누군가 말한다. “올라간 땅값 등을 감안하면, 땅 팔고 정리하면 수십억 이상을 받을텐데 뭔 걱정이냐?”고. 소가 웃을 일이다. 부채 없는 농가가 없다는 사실은 알고나 있는 것일까? 생업을 포기하면 빚잔치다. 미래 수입은 더 이상 없다. 축산농가들은 그 암담함을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약간만이라도 시간을 더 주고, 기존의 생업을 포기하지 않고 보다 나은 지속 가능한 축산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