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정부는 촛불정부”라고 한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전국 1000여만 명의 염원이 담긴 촛불에 의해 태어난 정부라는 뜻이다. 때문에 그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국가 권력에 희생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촛불의 준엄한 요구가 무엇인가? 돈과 권력을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를 함부로 억압하지 못하는 사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비상식이 상식이 되지 못하는 사회, 더 나아가서는 국가의 이익이라는 강요 앞에, 개인의 존엄이 무시되고 희생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자는 절규다.

 

촛불의 준엄한 요구

문재인 정부가 검찰 개혁의 한 방편으로 한시적 기구인 과거사위원회를 설치한 이유도, 과거 잘못된 결과로 고통 받았던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하지만 축산업에서만큼은 여전히 억울함이 존재하고, 축산농가들은 앞으로도 이전의 정부와 마찬가지로 왜곡과 그로 인한 홀대로 억울함이 쌓여갈 판이다.

농장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식탁으로 가는 과정에서 위생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줄곧 노력해온 농가와 축산관계자들이, 오염원을 배출하는 환경오염분자로 매도되며, 강물 등을 오염시키는 주오염원이 생활오폐수임에도 불구하고 가축분뇨로 둔갑되는 것 자체가 왜곡이다.

그렇게 축산농가들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동물을 학대해가면서까지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돈에 눈먼’ 부도덕자로 낙인찍히면서, “이런 사람들을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다”는 집단적 따돌림을 받고 있는 것이 억울함이다.

산업의 성격상 축산업이 환경친화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축산농가들만은 유독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정부가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펴면서 경제 비교우위론에 밀린 축산업은 “아프다”는 소리 한 번 하지 못한 채 희생을 강요당했다.

선대책을 요구하는 축산농가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잇따른 축산강국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축산농가를 비롯 축산 전문가들이 이익을 보는 산업이, 희생되는 산업에게 이득의 얼마를 나눠야 한다는 ‘무역이득공유제’를 제기했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농축산부가 물타기

그 사이 FMD·AI·살충제 계란 등등 축산업에 악재가 등장하자 정부는 아예 축산업을 정리하려고 칼을 빼든 것처럼 보인다. 이참에 더 이상의 무허가축사 적법화의 유예 기한을 당초 기간인 3월 24월로 못 박을 모양이다.

2015년 3월 개정된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 후 3년의 유예기간을 줬으니, 그동안 준비를 못한 축산농가들의 나태로 규정하고 더 이상의 연장은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기간만으로 놓고 보면 100% 축산농가의 잘못이다. 하지만 왜 축산농가들이 억울하다고 분통을 터뜨리는지를 차분히 듣기만 해도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정부의 적법화 지침이 8개월 지연된 데다, 가축질병 발생으로 11개월 동안 교육을 비롯 축산인 모임 자체가 금지됐다. 결과적으로 준비기간은 14개월도 되지 못했다.

여기에 당초 2015년 3월 법령 시행 시에는 신규농가에 한정된 법이 그 해 12월 축산농가들의 의견 수렴 없이 공청회 등을 통해 기존농가까지로 확대 적용한 기간까지 포함하면 실제 대응할 시간은 5개월 남짓으로 더 짧아진다. 복잡한 행정절차가 더해져 6~7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한 수치의 개념만으로도 이건 축산업을 하지 말라는 뜻과 다름이 없다.

이런 문제들의 해결에 앞장서야 할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집계를 통해 전체 4만5303호 중 48%인 2만1754호가 완료 또는 추진 중이며, 이중 1단계 대상 1만8619호 중 60.5%인 1만1265호가 완료 또는 추진 중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축산단체협의회는 농축산부의 이 같은 집계가 ‘엉터리’라는 주장이다. 축단협은 2017년 12월 현재 적법화 완료농가는 전체의 13.4%이며, 정부는 상담농가와 컨설팅 의뢰농가를 모두 ‘추진 중’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집계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정부의 집계 외에도 무허가축사 농가 상당수가 존재하기에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단 한 번의 기회라도

무허가 축사 적법화가 이대로 진행되면 한우농가의 1/3, 돼지농가의 절반 이상이 폐업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국내 축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이 참에 ‘더러운’ 축사가 자연스럽게 다 없어졌으면 싶겠지만, 축산물에 대한 식량주권이 사라지는 날이 되면 정체불명의 외국산 축산물을 구입할 수밖에 도리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지난 15일 축산단체협의회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기간 연장과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1인 시위에 들어갔다. 농협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일선조합은 물론 중앙회까지 ‘읍소’에 나섰다.

‘축산농가들이 잘못한 것이 없고, 모두 정부의 탓이다’가 아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안다. 환경친화형 축산이 아니면 미래가 없다는 사실도 안다. 때문에 ‘단 한 번’의 기회라도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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