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농업분야를 청탁금지법 가액기준 예외적용 대상으로 하는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이 권익위원회 전원위원회에서 가결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환영’으로,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일단 환영’으로 답했다.

청탁금지법 시행령 주요 개정(안)은 기존 「3·5·10」원칙, 즉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3·10(5+농축수산품)·5」로 변경한 것이다. 공직자 등이 받을 수 있는 선물가액 5만원은 유지하되 농축수산품과 농축수산물 함량이 50%를 넘는 가공품에 한해 10만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 대신 공직자 등이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축의금, 조의금 등 경조사비를 기존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축소시켰다.

 

국민 여론은 ‘냉담’

 

당초 지난달 27일 심의에서는 찬성 6명, 반대 5명, 기권 1명으로 부결된 바 있다. 하지만 11일 권익위원들 사이에서 여전히 격론이 오고간 후, ‘음식물, 선물, 경조사비 허용 가액의 추가적인 완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의 부대의견을 다는 조건으로 표결 없이 통과됐다.

정부는 시행령이 개정되면 2017년 설 선물세트와 추석 판매액이 각각 25.8%, 7.6% 감소하는 등 청탁금지법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던 농업계의 피해는 많은 부분 해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환영’이든 ‘일단 환영’이든 농축산부와 축산단체들의 입장과 달리, 개정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여론은 여전히 뜨겁다.

“공무원에게는 경조사비 단돈 1만원도 줘선 안된다”는 ‘공무원 혐오’가 높고, “일단 손을 대면 누더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부터, “비리 권하는 정부” 그리고 “정작 이것이 농민을 위한 개정인지”까지 온라인상에는 불만의 목소리가 뜨겁다.

이번 가액 조정과 관련 전국한우협회조차 “만족할 순 없지만 국회에 감사를 드린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축산업계의 최고 피해산업인 한우산업의 입장에서 이번 개정이 결코 환영할만한 일일까?

선물세트의 93% 이상이 10만원 이상이다. 피해 해소에는 턱없이 부족한 이번 결정에 성명서까지 내면서 무슨 감사를 드린다는 말인지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내년 설 명절 농축수산물 선물 시장에 활기를 넣어 농축산업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다는 국회의원들의 ‘관심’에 무게를 뒀지만 이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한우, 좋아할 일 아냐

 

이번 개정을 통해 모든 국민들에게 FTA로 인한 농축산업의 어려움을 알리고, 국내산 농축수산물이 청탁금지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국민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긍정적 효과라는 평가도 다분히 주관적일 뿐이다.

이번 개정을 주도한 이낙연 국무총리에 대한 비난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과의 공감대’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최근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1년 동안 한돈 소비는 오히려 증가했다. 지난 추석 한돈선물세트 판매수량이 설 명절 대비 무려 300% 가까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물론 긴 황금연휴 효과가 컸다고는 하지만, 청탁금지법 영향에 따른 단체 대량 주문의 증가가 원인인 것으로 분석됐다. 대체효과가 그만큼 컸던 것이다.

이번 가액 조정은 특히 한우산업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당초 청탁금지법을 수입육에게 국내 소고기 시장을 내어줄 것이라며 반대해 왔던 예상이 현실로 ‘가속화’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5만원 이하로는 수입 소고기로도 선물세트를 맞추기 쉽지 않았지만, 이젠 충분히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부위로 세트의 구색을 맞출 수 있기에 그렇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국 광역·특별시에 거주하는 20대 이상의 소비자 10명 중 9명은 수입 소고기를 구매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상자 1000명 중 재구매 의향을 밝힌 사람만 무려 973명이다. 이전에는 가격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이제는 맛과 안전성에서도 가격의 만족도를 따라잡는 상황이다. 결국 한우산업의 입장에서는 이번 청탁금지법의 개정이 결코 환영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외’를 주장하는 입지가 더 좁아졌을 뿐이다.

 

‘제외’ 주장 명분 없어

 

정부는 한우와 인삼의 경우 상품 구성을 다양화해 소비자 부담을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우 비선호 부위를 활용한 가정간편식 상품을 개발하고, 소포장, 실속형 선물세트를 선정해 한우 자조금을 통한 택배비 지원 등을 실시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한우산업이 사는 길은 아니다.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지금 한우산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소비자는 물론 농가들 스스로도 잘 모른다고 지적한다. 자급률 32%대가 얼마나 위중한 수치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단기적 정책의 실패로 번식산업이 붕괴된 상황에서는 생산비 절감을 위해 노력을 해도 별반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또 소비자는 한우 값이 높으면 농가의 수익이 그만큼 높을 것이라 여기는 데, 그 또한 한우산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번 청탁금지법 개정이 한우농가의 입장으로선 결코 좋을 것이 없다. 약간의 수정으로도 국민의 반대 입장은 더욱 뜨겁기에 그렇다. 이젠 다시 ‘제외’ 주장하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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