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발 FMD 재앙이 오기 전, 국내 축산업의 패러다임은 단지 ‘양(量)에서 질(質)’로의 변화에 불과했다. 국내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국민들의 축산물에 대한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국내 축산업도 이에 대응해 밀집사육이 진행됐다.

국민 소득이 일정 수준까지 올라가면서 식생활 개선 붐이 빠르게 진행되고, 그 붐을 타고 생산만 하면 팔렸던 시대, 즉 양적 성장의 길을 걸었다.

 

국산 충성도 떨어져

 

여기에 갑자기 늘어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저가의 외국산 축산물 유입이 증가했고, 외국산 소·돼지고기 등의 개방이 진행되면서 외국산 축산물은 봇물 터지듯 국내로 밀려들었다. 이에 외국산과 경쟁이 심각한 과제로 대두됐고, ‘차별화 전략’으로 대형유통업체들을 중심으로 축산물 브랜드화가 진행됐으며, 정부의 정책 역시 축산업 생존전략의 차원에서 이를 적극 지지했다. 축산업의 패러다임이 본격적 ‘고품격’으로 전환됐음을 의미한다.

브랜드를 통한 생산자들의 조직화라는 축산물 브랜드 정착시대가 열렸다. 패러다임이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고기생산 경쟁이 심화되면서 스토리가 있는 축산물로 바뀌었다.

생산에 대한 정보가 매뉴얼화 됨에 따라 대부분 소·돼지고기 질이 크게 향상됐다.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안정되면서 외식산업도 크게 발달했다. 소비자가 원하면 그 욕구에 맞는 축산물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 손에 있는 축산물이, 어디서 어떻게 사육되고 어떤 유통경로를 통해 있게 됐는지를 그 자리에서 알 수 있을 정도로 시스템도 구축됐다.

그러나 ‘안동발 FMD 재앙’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뒤집어 놓았다. 소비자들의 축산업과 축산농가에 대한 혐오감과 실망감이 깊어지면서 국내산 축산물에 대한 충성도가 크게 떨어졌다.

소비자들에게는 더 이상 ‘가축질병의 원인이 무엇이냐’라거나 ‘확산이 누구의 책임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350만여 마리가 묻힌 땅이 녹으며 침출수 문제 등 환경 재앙의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소비자들의 축산혐오감은 더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에 따라 국내산 축산물의 안전·위생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국내 축산물도, 축산농가나 정부, 생산자단체들이 제기하는 외국산과의 차별화가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는 인식이 깊게 박힘으로써 국내 축산물 기피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찻잔 속 태풍’에 그쳐

 

이러한 상황은 소비자들에게 “속고 먹느니, 아예 외국산 축산물을 사먹겠다”는 심리를 부추켜, 외국산 축산물 소비 증가를 낳았고, 한우·돼지고기 모두 자급률이 크게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눔축산운동본부와 축산자조금연합회가 조직돼 축산인들도 지역민 또는 국민들과 함께하는 상생의 이미지를 고취시키고, 각종 좌담회나 토론회를 개최해 축산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은 ‘찻잔 속의 태풍’ 에 지나지 않는다.

태풍이 찻잔을 깨고 밖으로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는 인식 전환을 위한 시간은 더딘데, 또 다른 대형 악성가축질병이 발생함으로써 ‘원래 그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3일 전국의 AI 발생지역에 대한 이동제한이 모두 해제됐다. 2016년 11월부터 6개월 동안 발생된 AI로, 전국 946농가의 3787만 마리의 닭·오리가 살처분돼 또 땅에 묻혔다. 그 피해액만 1조2000여억원에 이른다. 전국 가금농가가 사육하고 있는 닭의 35%에 달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이전 계란 한 판값의 3배에 달하는 가격 폭등을 겪었다. 가히 ‘계란의 역습’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누구도 수십 년 동안 의심하지 않았던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인 계란 가격의 폭등이었다. 여기에 ‘유럽발 살충제 계란 파동’은 열악한 양계산업의 민낯을 고스란히 국민 앞에 드러냈다.

양계협회를 중심으로 가금단체들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면서도, 축산자조금연합회는 참여 축종에 따라 서로 이해가 달라 ‘각자도생’하기로 결론을 내리고, 내년부터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축종 소비에 진력키로 했다.

 

‘육류먹지 말자’ 확산

 

축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시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국내 축산업의 살 길이 없다는 것에는 전체가 동의했지만, 역할에 있어서는 역시나 이기적인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기심으로는, ‘부정’으로 돌아선 인식을 결코 ‘긍정’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유럽을 중심으로 미국에서도 친환경 축산과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다 적극적인 소비자는 “육류를 먹지 말자”고 주장한다. 축산물은 동물 학대와 연결될 뿐만 아니라 지구의 식량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낭비하는 대표적인 산업이라는 것이다.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농장 내부는 물론, 비윤리적으로 도살되는 도축장을 찍은 영상을 배포하면서 ‘아우슈비츠의 학살장’으로까지 비유한다. 축산업은 지속되어서는 안되는 대표적인 산업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조차 우리가 왜 축산업을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하느냐의 까닭은 단 하나다. 바로 ‘생존’이기 때문이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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