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축산업의 패러다임이 ‘친환경 동물복지’로 바뀌었다며 축산농가들의 사육 패턴 역시 그대로 바뀌지 않으면 ‘미래 지속가능한 축산업’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축산업의 패러다임은 ‘FMD 재앙’ 이후 이미 그렇게 바뀌었다. 그것을 대다수의 생산자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생산자만의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친환경이나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으며, 동물의 건강과 행복을 유지하면서 사육하는 환경조성 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유행처럼 일었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이 소원해지면서 친환경·동물복지형 사육도 뜸해졌다.

 

등급제도까지 손질

 

소비자로 지칭되는 시민들은 축산물 값이 너무 높다고 불만이다. 국내산 축산물이 좋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가격이 높아 선 듯 접근하기 어렵다고 한다. 특히 한우고기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소비자단체들의 줄기찬 ‘불평’은, 정부로 하여금 등급제 개선까지 이끌어냈다.

“지방이 너무 많아 건강에 좋지 않다”는 둥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실상은 ‘가격’이 가장 큰 이유다. 여기에 정부가 편승해 등급제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생산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억울하다.

언론도 아무 전문성도 갖지 못한 채, 어느 날엔 “지방이 몸에 안 좋다”며 일방적으로 가축사육 방식을 매도하다가, 니나 타이숄스의 「지방의 역설」이 입소문을 타자 갑자기 “탄수화물이 더 안 좋다”고 논조를 정반대로 바꾼다.

소비자도 혼란스럽지만, 축산농가는 더욱 황당하다. 그렇게 오락가락하는 동안 피해는 온전히 축산농가의 몫이다.

축산농가나 개량 전문가들 사이에서 최근 등급제 개선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정책이 바뀌기 전에 충분한 의견 수렴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추기 위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높다.

값싼 외국산 소고기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부가 주도한 고품질화 정책에 따라 개량 방향은 ‘도체중’을 중심으로, 다시 품질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등심단면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 정착단계에 접어든 개량사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무조건 ‘소비자가 왕’인 시대는 지나갔다. 먹을거리 구입에 윤리적이거나 좀 더 세심한 소비자만이 친환경이나 동물복지를 주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소비활동이 비로소 생산 방식을 바꾸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대가를 치러야

 

슬로푸드 아카데미 교장을 맡고 있는 김종덕 교수는 「음식문맹자, 음식시민을 만나다」라는 저서에서 자신이 먹는 음식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일컬어 ‘음식문맹자’라고 했다. 음식문맹자는 음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음식에 대해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잘못 알고 있다고 한다. 현대인 대부분이 음식 문맹자라고 지적했다.

소비자로서의 현대인들은 식재료부터 생산지, 생산자가 잘 알려지지 않은 정체불명의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 소비자로서 생산자인 농민과 떨어져 있어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생산방식을 알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다. 이들은 또 알기 어렵게 되어 있는 복잡한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를 먹고 있다.

음식문맹자들의 식생활은 지배적인 세계 식량체계의 강화를 가져와 지역의 농민들이 농사를 그만두게 하고 지역의 식량보장을 낮추고 지역경제의 침체와 지구온난화까지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친환경과 동물복지를 통해 생산되는 축산물을 원한다면 소비자들은 그 대신 어떤 뭔가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런 의사는 별로 없다. 한 소비자 소비패턴과 의향 조사에 따르면 그렇게 생산된 축산물의 가격이 일반 축산물의 가격보다 1.6배 또는 2배 가량 높다고 해도 구입하겠다고 응답했지만, 실상 매장에서는 의향대로 구입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축산농가도 “친환경이나 동물복지의 사육형태를 통해 축산물을 생산하겠다”고 직접 뛰어들기도 하고, 의향도 있지만 발생하는 ‘비용’의 문제 때문에 주저한다. 판로도 마땅하지 않고, 사육에도 이전보다 더 많은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비싼 커피 마시면서

 

소비자들이 값보다 품질에 더 관심을 가지고 지갑을 열기만 한다면 이러한 문제들도 차츰 해결될 수도 있다. 축산농가들이 추가 지출할 경우 판매가격을 올릴 수만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농가들은 기꺼이 투자할 수도 있다.

안전대책이나 위생문제는 소비자들이 쉽게 지갑을 열만한 부가가치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통업체들이 추가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방법이 없으니, 농가들의 가격 인상을 받아들이기도 애매하다.

미국에서 양심적인 계란을 생산하는 시드 지만스키 씨는 12개당 2.99달러(한화 3000여원)에 파는데, 사람들이 가격이 비싸다고 불평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이봐요, 계란 하나에 10센트, 아니면 20센트 더 써서 닭들이 행복하게 살게 해준다면 그걸 못해요? 계란 하나에 20센트 주고는 4.5달러짜리 카페라테를 마실 건가요? 영양가도 없는 건 그만큼 주고 마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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