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한 밥상을 앞에 두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님, 임금은 아버님이 이 전쟁을 어떤 마음으로 임하고 있는 지를 항상 의심하며, 그 측근들은 전쟁의 와중에서도 아버님을 헐뜯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아니 오히려 죽기를 각오하고 적군들을 물리쳤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잘못된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대역’ 운운하며 형(刑)을 가해 지금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계십니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아들은 눈물을 보이며 권한다.

 

윗분들만 모르는 듯

 

“아버님, 그냥 모든 것을 훨훨 털어버리고 고향으로 가십시다. 왜 여기서 이렇게 고생하고 계십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간곡한 아들의 권유와 질문에 아버지는 그제서야 목소리는 작지만 단호하게 답한다.

“아들아, 무릇 장수는 충(忠)을 따라야 한다.” “임금은 아버지를 버렸습니다. 그런 임금에게 무슨 충성을 해야 합니까?” 아버지는 아들을 똑바로 보며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영화 「명량」의 이순신과 아들의 대화를 담은 이 한 장면은, 권력의 주변에서 맴돌며 욕망을 좇는 기득권층이 호가호위하는 것이 일상화된 세태에 일갈(一喝)한다.

‘농협, 21세기를 허(許)하라’를 끝냈다. 때로는 너무 추상적이고, 깊이도 낮아 “도대체 뭘 지적하려고 했느냐”는 질책을 받기도 했고, “고맙다”는 위로도 받았다. 하지만 그 위로란, 허름한 술집에 앉아 그 말에 말을 더하면서 ‘농협은 지금 위기’라는 점에 동의했다는 점이 더 맞는 말이었다.

정부의 농업과 관련된 모든 정책 등에서 농협이 조금씩 제외되고 있다는 사실은, 정부조차도 농협을 농업을 대변하는 조직이라기보다는 사기업화 되고 있다는 우려를, 더욱이 이러한 행태들을 자체적으로 개선해보려는 노력이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는, 그래서 어쩔 수 없는 포기를 의미한다. 농협의 윗분(?)들만 그것을 모르는 듯하다.

김병원 회장의 ‘셀프 전관예우’ 소식을 듣자마자 전국한우협회에서는 ‘농협 적폐청산’을 내걸고 농협중앙회 앞마당에 이달 말까지 집회신고를 냈다. 농협의 직원들은 왜 한우협회가 ‘적폐청산’이란 험악한(?) 단어를 내세우면서까지 나서는지 이해하기보다는 자괴감이 먼저 든다고 한숨이다.

 

“자괴감 든다” 한숨만

 

한우협회의 움직임에 대해 축산관련단체들을 비롯 주변에선 “한우산업 문제도 아니고 한우협회가 농협 개혁을 부르짖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 주론이다. 한우협회는 여타 단체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이 불만이다. “농가가 주인인 협동조합의 개혁에 무슨 축종이 필요하고, 단체가 필요하냐”는 것이다.

한우협회의 주장은 간단하다. 협동조합의 주인이 농민이라는 이념에 충실하게 농협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대한민국 농업이 바뀌고 축산업이 바뀐다는 것이 논리다.

한우협회가 농협중앙회 앞에서 ‘농협 적폐청산’을 들고 릴레이 집회를 열고 있는 것이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집회가 예정됐던 그 순간부터 농협중앙회가 대응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농협이 정말 왜 저럴까?”다.

릴레이 집회는 한우협회가 불쑥 내놓은 것이 아니다. 지난번 이사회에서 철회되긴 했지만 ‘김병원 회장의 셀프 전관예우’가 발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는커녕 축산경제에게 떠넘기며 “책임지고 막으라”는 명령은, 농업을 대표하는 조직인 농협중앙회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때문에 직원들이 갖는 자괴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농협이 경제지주 체제로 이관되면서 중앙회에 더욱 예속됐다고 한다.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농협중앙회 이사회가 좌지우지 하면서, 농협경제지주 이사회는 있으나 마나 한 조직이라고도 한다.

결국 중앙회장과 그를 둘러싼 임원, 이사회의 막강한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과연 농민을 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작금의 현실이 말해주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지인이 울분을 터트리며 한 말이 생각난다. “공무원이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하는 단어가 위국보민(爲國保民)입니다. 국가와 국민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책무이니 말입니다. 농협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농민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 국가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 될테니까 말입니다.”

 

바른말 하는 이 없어

 

아무도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바른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셀프 전관예우’도 그래서 불거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나의 업무가 무엇인지를 진중하게 깨달아야 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전국시대 말기 사상가이자 법가 학파를 대표하는 인물인 한비자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네가지의 악덕을 지적했다. 이 중 2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승부욕이 강하고 지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들은 의견을 받아들이는 행동이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타인의 의견을 듣고 반성하거나 뒤돌아볼 줄 모른다면 극단으로 치닫기 쉽다.

또한 지나친 자신감은 항상 문제를 유발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의 생각이 최고라고 여기면 남의 비웃음을 사기 일쑤이며 실패했을 때 충격이 커서 재도전을 포기한다.”

지금 농협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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