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유례 없는 AI 발생으로 국가 경제의 한 축이 흔들리고, 2월 1일 현재 3200여 만마리가 살처분 매몰되면서 직접적 손실을 입은 가금농가의 고통도 고통이려니와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또 축산업에 대한 ‘혐오감’로 다가온다.

나눔이다, 환경개선운동이다, 축산업 종사자들이 자정 노력으로 국내 축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조금씩 없어질만 하면 악성가축질병의 재발로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는 ‘되풀이’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노력에 찬물

 

AI 신고가 잦아들 즈음 한 가금단체의 ‘2017 VIV ASIA 태국 종합축산박람회’ 참관단 모집 소식은 AI로 고통 받고 있는 가금농가나 조기 종식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지자체, 그리고 협동조합을 포함한 여타 단체들, 심지어 되풀이 되고 있는 ‘악성가축질병의 고리’를 끊고자 애써온 언론이나, 정부·국회 모두에게 충격을 줄만한 일이다.

명분은 가금산업의 빠르고 거대한 세계시장을 파악하고 최신 산업동향 분석과 획기적 아이템 창출, 신 바이어 개척, 제품 프로모션, 고부가가치 사업 창출을 위한 자리라고 하지만 이건 그저 박람회 참관단 모집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여행사의 홍보에 지나지 않는다.

여행사는 박람회 참관 등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하니 그렇다고 해도 그에 놀아나는(?) 생산자단체는 뭔지 참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그것도 처음엔 두 개의 참관단-하나는 투어·다른 하나는 골프팀-을 모집한다고 했다가, 그래도 켕기는지 슬그머니 골프팀을 없앴다. 이번 참관단은 3월 11일부터 13일까지로 3박5일의 코스다. 박람회 뿐만 아니라 방콕과 파타야 등의 지역을 시찰할 계획이란다.

3월이면 AI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일까? 그래서 그동안 고통 받은 가금농가나 가금관련 종사자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자리를 마련했다는 말일까?

2월 1일 현재 살처분·매몰이 완료된 농가는 819농가의 3281만 마리다. 이중 산란계가 2337만 마리로 전체 사육마리수의 33.5%, 산란종계 43만7000마리로 51.5%를 차지한다. 이로 인해 계란 가격의 폭등을 경험했고, 소비자들은 난생처음 미국산 흰색 계란의 맛을 봤다.

종계의 50% 이상이 사라지면서 향후 계란값은 상반기 이후까지도 고공행진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금산업 전체가 이 지경인데, 이들의 아픔과 향후 대책 마련에 고민해도 모자랄 대표 생산자단체가 여행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표현조차도 과하지 않나 싶다.

 

‘여행 타령’ 뭐라 할까

 

“농가가 아니라 가금시설업체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관계자의 말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해도, 전 재산을 다 날리고 우울증과 울화병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 많은 농가들은 이 ‘여행 타령’을 뭐라고 이해할까· 이들의 처지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으면 이런 헤프닝은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그 단체의 단체장 농장도 AI로 거덜이 난 상태라면 도대체 이 집단은 뭐하는 집단이냐고 되묻고 싶다.

참관단 취지를 백번 인정한다고 해도 일정표를 살펴보면 여행사의 속내가 다 드러난다. 그 장단에 놀아나는 생산자단체라면 해당 농가들은 불쌍함 그 자체다. 관광과 전통 마사지 체험, 해변에서의 자유시간, 자연 테마파크, 어메이징 아트 뮤지엄 관람, 축산박람회 참관은 돌아오는 당일 하루에 불과하다.

‘2017년 농림축산식품분야 합동 업무계획 발표회’ 직후 실시한 정책토론회에서 농축산부는 ‘고병원성 AI 발생 개선 대책(안)’을 발표했다. 이는 확정된 내용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개선 방향을 가늠할 있는 것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방역소홀 농가는 손해가 된다는 원칙에 입각해 농장 차단 방역 강화와 사전예방 체계 구축, 발생 시 총력 대응을 위한 제도 개편으로 AI 재발 방지 및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 한다고 명시했다. 또 발생 및 예방 살처분 농장에 대한 재입식 요건을 강화한다는 것이 골자다.

 

단체 품격 지켜야

 

이에 대해 수의전문가들은 “근본 처방 없고 규제만 강화할 뿐 아니라 13년 동안 7차례나 되풀이 되면서 법·SOP를 갖췄지만 늑장 대응·현장에선 무시되기 일쑤여서 별무효과”라며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농협중앙회는 AI가 국내에 발생하자 이를 차단하기 위하여 전 조직이 비상방역체제에 돌입했다. 방역용품을 긴급 공급하고, 방역소독 16만6000회 실시, 사료가격 2.5%인하, 가금류 소비촉진 47억 및 발생지 축협 재해자금 850억원을 긴급 공급하였으며, 방역 현장에 인력 5만588명이 투입됐다.

또 ‘닭고기 먹는 날’을 정하고, 매주 전국의 일선축협과 농협지역본부에서도 가금산물 팔아주기·시식회 등 가금농가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땀 흘리고 있다. 지자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일부 지자체는 살처분·매몰 작업에 투입된 공무원과 인부들을 위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치료를 위해 따로 진료소까지 설치했다.

가금산업을 둘러싼 연관산업계 등의 이런 움직임에 정작 가금단체가 이 지경으로 화답하면, 도움의 손길에 침뱉는 격이다. 제발 생산자단체의 품격을 지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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