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향락으로 프랑스 혁명을 재촉한 것으로 지목되는가 하면,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당하게 폄하돼 죽임을 당한 비운의 여인으로 동정받기도 한다.

1770년 5월 14세의 나이로 한 살 많은 루이 오귀스트, 향후 루이 16세가 될 왕세자와 정략 결혼했다. 합스부르크 공국의 여제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이었던 그녀의 삶은 비단길 그 자체였다. 유럽 왕실의 전형적 삶, 왕실 행사에 참석하고 또래 왕족들과 어울려 놀며 왕실의 예법과 교양을 쌓는 평온 안락한 생활이었다.

 

“빵 없으면 케이크를”

 

18세기 유럽 공주들이 받은 교육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쓰기에서 곤란을 겪었고, 아주 느리게 쓰고 종종 얼룩이 번지고 철자가 틀렸다고 한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빠르게 관심이 바뀌는 등 산만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본성은 상냥하고 친절하고, 예쁜 용모에 착하고 예술을 애호하기도 했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

그러나 귀족과 평민의 격차가 커지고 평민들의 빈곤이 일상화되면서 굶주림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프랑스의 불행이 그녀로부터 비롯됐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혼외정사를 하며 정부를 갈아치우는 음탕한 여자에서부터 동성연애를 한다는 둥, 그녀가 낳은 왕자가 루이 16세의 소생이 아니라는 갖가지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 중 하나였던, 빵이 없어 굶주려 죽는 사람들을 보면서 했다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은 사실 그녀가 한 말은 아니었지만 왕실을 포함한 1% 귀족들의 정신세계가 어땠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에게 대다수 일반인들의 삶은 관심이 없다. 자신의 주변과 생활이 풍요로우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줄 착각하기 때문이다. 가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가난하게 사는지 알 턱이 없다. 모든 것을 타인이 해결해 주고, 일상적인 법과 규제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마리 앙투와네트는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천부인권설’에 관심이 많았고, 루소를 추종했다. 루소의 사상을 동경한 나머지 궁에서 농사를 짓고 직접 소젖을 짜기도 했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주장을 오해한 것이다. 루소가 말하는 자연은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환경이 아닌 ‘국가 이전의 상태’를 의미하는 데 말이다.

 

하수인 역할을 자처

 

애당초 1%의 삶은 대개 그렇다. 어떤 땐 풍요로움이 지겹고, 여유로움이 끔찍하다. 돈 쓰는 일에도 재미가 없다. 쓰는 그 이상의 돈이 또 쌓이니 그렇다. 피 땀 흘려 얻은 부와 권력이 아니어서 경쟁이 뭔지도, 돈이 없어 아이를 먹이지 못하는 심정도, 아픈 부모를 눈물로 떠나보내는 피끓음도 모른다. 1%의 삶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다 똑같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흙수저로 태어나 그 1%의 주변에서 그 세계를 추종하는 자들의 몸부림은 가히 눈물겹다. 먼저 고시촌에 들어가 앞으로의 영광을 위해 세속을 잊고 몇 년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행시와 사시 그리고 외시에 합격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1%의 집안이나 1%를 지향하는 다른 누군가의 집안과 결합해야 한다. 인간성이 어떻고, 사랑이 어떻고 하는 것은 이미 사치다.

그렇게 해서 한 자리를 차지하면 그 지위를 이용해 겉으로는 명예를 쌓고, 속으론 검은 돈을 끌어 모아 1%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 1%의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려고 줄을 대고, 그 줄을 이용해 더 높은 곳을 향한다. 자존감이 뭔 대순가. 1% 안에만 들어가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며 사돈의 팔촌은 물론이고 자자손손 평안을 찾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1%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민중이 개나 돼지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중도 그들을 부르는 말이 있다. ‘권력의 하수인’·‘권력의 기생충’이 그것이다. 하지만 억울한 것은 그들에겐 권력이 있고, 민중은 그 권력 앞에 벌거벗었다는 점이다.

 

국격은 국민 자존감

 

아귀(餓鬼)같은 그들은 그들끼리 뭉쳐 못 가진 사람이든 덜 가진 사람이든 관계없이 하나라도 더 빼앗기 위해 끊임없이 착취의 방법을 고안한다. 그들의 세계가 그러니 그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관심이 없고, 비난은 오히려 ‘비정상’으로, ‘있는 사람을 무조건 흠집 내려는 질시와 질투’로 보일 수밖에.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관철시킨 ‘인사청문회법’을 통해 우리는 줄곧 그들의 짓거리를 목도하고 있다. 부정 축재는 물론이고 온갖 특혜를 받아왔으면서도 이젠 명예마저 취하려는 후안무치의 행위를 지켜보고 있다.

일반 국민이었으면 당연시 법적 처벌을 받았을 그 행위들 앞에서까지 한결같이 뻔뻔하다. 그저 그 시간만 고개 숙일 뿐이다. 최고 권력자에 대한 충성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겐 그것이 애국이다. 타락한 이에게 주어지는 권력은 국민에겐 그 자체가 고난이요, 불행이다.

국격은 나라의 품격이자 그 구성원인 국민의 자존감이다.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통치권자가 국격을 이야기하는 데 국민이 받는 모멸감은 대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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