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상(商)나라의 주왕(紂王)은 어린 시절에는 슬기로웠지만 달기라는 여인의 치마폭에 싸여 정사를 돌보지 않고 결국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다. 그에게는 숙부인 비간(比干)과 기자(箕子) 그리고 주왕의 이복형제인 미자(微子)가 있었다.

이들은 충성스럽고 유능한 신하였으며 늘 주왕에게 달기를 멀리하고 나라를 돌보라고 간언했다. 하지만 주왕은 이들의 권고를 듣지 않고 비간을 죽이고, 미자를 쫓아냈으며 기자를 미치광이로 만들었다.

주왕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지혜로움과 용감함으로 명군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왕은 정사를 논하고 난 후 상아 젓가락을 들고 와 대신들에게 자랑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상아 젓가락의 아름다움을 신하들은 칭찬했다.

기자만이 창백한 얼굴로 젓가락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친한 대신 한 명이 후에 연유를 물었다.

“상아 젓가락을 쓴다면 질그릇에 국을 담아 먹지 않고 상아와 같거나 그보다 좋은 그릇을 쓸 것이네. 상아 젓가락, 옥그릇을 사용하면 콩잎으로 만든 국을 담지는 않을 것이고, 반드시 코끼리 고기나 표범의 태아 고기처럼 진귀한 고기를 찾을 것이네.

진귀한 고기를 먹으면 낡고 소박한 옷을 입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비단 옷을 겹겹이 입고 궁중 궁궐을 지을 것이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왕에게 불만을 품고 비난이 그치지 않을 것이나 왕이 그 불만을 듣고 가만히 있겠는가. 그것을 진압하기 위해 포악해질 테니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자의 말처럼 주왕은 사치를 일삼고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를 달아 숲을 만들었다.

 

# 장면 2

18세기 철학가 겸 문학자 드니 디디로는 <나의 낡은 침실 가운과 이별한 이후의 고뇌>라는 수필에서 친구에게 선물 받은 아름다운 진홍색 침실 가운이 어떻게 집을 바꾸어 놓았는지 이야기 한다.

선물을 받고 기쁜 나머지 디드로는 그때까지 입고 있던 낡고 오래된 가운을 버린다. 그러나 기쁨은 잠깐이었고, 예쁜 가운을 입고 보니 집에 있는 다른 가구들이 허름하고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서재에 있는 오래된 가구들을 하나씩 새것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낡은 의자는 모로코 산 가죽으로 만든 안락의자로 바꿨다. 곧 망가질 것 같은 오래된 책상도 치우고 값비싼 새 책상을 들였다. 몇 년간 벽에 걸어뒀던 좋아하는 그림도 우아한 새 가운과 어울리는 비싼 그림으로 바꿔 걸었다.

“나는 내 낡은 가운의 완전한 주인이었는데 이제 새 가운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렇듯 하나의 상품 구입으로 그 상품과 연관된 제품을 연속적으로 구입하게 되는 현상을 ‘디드로 효과’라고 한다.

 

# 장면 3

2010년 11월 말. 경북 안동에서 FMD가 발생했다. 잊을 만 하면 터지는 FMD를 접한 축산농가는 이 또한 쉽게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의성의 한 한우농가는 동료농가들과 이미 일정이 잡혀 있다는 이유로 FMD가 만연되어 있는 중국 여행을 취소하지도 않은 채 훌쩍 떠났다.

FMD는 안동을 쓸어버리고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등 제주와 전남북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창궐했다. 처음엔 2~3일만 지나면 발길이 끊겼던 손님들이 다시 돌아온다고 느긋해 했던 식당 주인들도 이전과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동 통제가 이루어지면서 지역에 갇힌 농가와 일반 주민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십 년 간 가축개량 산실도 FMD의 폭격을 맞았다. 전국의 행사가 중지되자 온 국민들의 비난의 화살이 축산농가들로 쏟아졌다.

350여만 마리의 소·돼지가 산채로 혹은 배를 갈린 채 땅에 묻혔다. 사육 농가는 애지중지 키웠던 재산을 잃었다는 슬픔보다 살아 울부짖는 생물에 독극물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함께 울었다. 수의사도 공무원도 축산농가도 그것을 지켜보는 국민들도 모두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렸다.

그때 비로소 축산인들이나 일반인들이 몰랐던 사실 하나를 깨우쳤다. 축산인들은 축산업이 과거와 같이 더 이상 농업의 한 지류였던 부업농이 아니라는 것을. 국가 경제와 기타 산업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축산농가의 큰 피해로만 끝났던 악성가축질병이 3조원이 넘는 국가 예산이 소요되고, 경제적·사회적 문제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축산업은 이제 축산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이후부터 후폭풍이 몰려왔다. 축산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깊어지면서 제멋대로 가축을 사육하던 방식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축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그렇게 깊어졌다.

‘나눔축산운동’이 또 그렇게 시작됐다. 축산업은 오염산업이 아니라고, 축산농가들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5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축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지만, 이전처럼 애정 어린 시선이 아니다. 애당초 농축산업에 관심이 없는 정부는 그렇다 치고, 돌아선 국민의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축산농가나 축산 관련인들의 나눔에 대한 관심도 형식에 치우친다. 나눔운동본부의 직원은 말한다. “구걸하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사랑받고 싶으면 먼저 사랑하고, 관심받고 싶으면 먼저 관심을 갖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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