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명 김영란법이 개정되지 않고 원안대로 시행돼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몇 일 전 축산관련 원로들의 모임에서 단체장을 역임했던 A씨가 느닷없이 소신이라며 던진 이 한마디로 화기애애 했던 분위기가 단박에 박살났다고 한다.

사회 전반에 걸쳐 각종 부패와 비리가, 특히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고 계획하고 철저히 수행함으로써 생존을 건 국제경쟁에서 온전하게 국민들을 보호해야 하는, 공무원들의 비리가 도를 넘어서면서 국민들 대다수는 신뢰를 접었다. “‘일부’ 공무원일 거야. 내가 사는 사회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며, 끈을 놓지 않았던 힘도 빠졌다.

 

적절치 못한 한마디

 

그렇게 A씨의 소신을 이해한다고 쳐도 몹시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다. 김영란법이 명칭으로는 부정청탁금지법이니, 김영란법을 반대하는 사람은 부정과 부패와 비리를 찬성하는 꼴이다. 하지만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막겠다는 목적이 입법 과정에서 변질되면서 무려 400만 명 이상이 적용 범주 내에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일반 국민 누구라도 범법자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 내용과 위법 기준에 대한 이해도 없이 축산관련단체장을 지냈던 그가 농담처럼 가볍게 ‘찬성’을 내뱉은 것으로 그동안 그가 보여 온 축산에 대한 애정도 흠집이 났다.

그러나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면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상상 이상으로 많다. 농축산업과 밀접한 관계가 없는 이들은 부정과 부패를 금지한다는 명분에 전폭적으로 찬성이다.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다. 자신이 법적 제재의 범주에 드는지 안드는 지도 모르는 체 말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2015년 3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열흘 전인 2월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관련 단체 등으로부터 여론을 ‘수렴’한다는 취지로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참석한 농축산인들은 법이 시행되면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중지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이날 참석한 법학과 교수들도 정치권력이 언론과 정적 제거용의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면서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고서는 통과해선 안된다고 지적했지만 그 어느 것도 수용되지 않았다. 국회는 묵살했다. 농축산인들이나 이날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여론 수렴’이라는 꼬득임에 들러리만 선 꼴이다. 법 통과 전 수 차례의 토론회도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본질적 문제 놔두고

 

부정청탁 사례를 근절하려고 식대와 선물·경조사비의 액수를 일괄적으로 정해놓고 법적 제재를 가하려는 것은 본질적 문제를 놔두고 소소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격이다. 정작 잡아야 할 것은 뒷거래로 오고가는 ‘뇌물수수’다.

명절에 선물이 오가는 것은 오랜 세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다.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제재를 가한다고 해서 미풍양속이 없어질 리가 없다. 때문에 편법이 횡행할 것도 쉽게 예상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 18일 김영란법 시행이 농축산물 선물 횟수를 최대 1/3 가량 줄일 것이며, 감소율을 적용해 농업생산 감소액을 추정한 결과 7500~9600억원이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외국산과의 경쟁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 품질을 고급화한 국내산 축산물이 김영란법에 의해 망가지게 될 위기에 처한 반면 FTA로 관세가 낮아지는 외국산 소고기를 비롯 축산물은 오히려 날개를 달고 국내 축산물 시장을 잠식해 갈 것이 뻔하다. 벌써 외국산 축산물의 수입량도 크게 늘었다. 전국한우협회가 김영란법을 ‘외국산 축산물 장려법’이라고 규정한 이유이고, 범축산인들이 규합하는 이유이다.

고가의 한우고기가 제한되면 대체수요를 기대할 수 있어 내심 찬성해야 할 양돈·양계·육계·오리 등 중소가축의 생산자단체들조차 반대의 입장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은 선물 수요의 대부분이 외국산 축산물로 전환되면 심각한 타격을 받을 해당업계 뿐만 아니라 국내 축산업계 전체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냥 목소리 아니다

 

지난 21일 범농축산인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총궐기대회를 연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면서 대기업들의 농축산업 진출이 붐을 이루면서 농축산인들은 삶의 터전이요, 생존의 밑바탕을 송두리째 잃게 될 두려움에 떨고 있다.

정부가 국내 농축산업을 재조정해, 국내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농축산 강국들의 농축산물과 경쟁하고 미래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선언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주축이 돼야 할 협동조합 내 축산 부문의 자율성과 독자성 그리고 전문성을 배제하겠다는 것이야말로 말과 행동의 다름이 아니고 뭘까.

오늘날 한국 경제의 성장에는 농축산업의 눈물이 짙게 배여 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그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축산업은 분배의 테이블에서 지금도 배제되고 있다. 힘이 없다고 무시하고 짓밟고 하는 행위는 정부가 해야 할 짓이 못된다. 어느 정권이든 농민이 분노하면 망했다. 이것이 역사로부터 배운 값진 교훈이다. 농민들의 목소리는 그냥 목소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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