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법을 어겨 가면서 시위를 하고, 경찰들은 폴리스라인(Police Line)을 벗어나 불법을 저지르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요?”

유학 중이었던 아들이 고등학교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 왔을 때가 광우병 파동 중간이었다. 그 녀석은 시청 앞 광장의 시위 현장을 보고 싶다며 함께 가 달라고 했다. 밤 12시 시위대 일부는 청와대 쪽으로 가고 나서 한산한 광장에서 아들에게 말했다. “시위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그 녀석은 이해하지 못했다.

 

해외선 조롱의 대상

 

대학을 다니다 군에 갈 나이를 조금 넘겨서 아들은 은근한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경을 지원했다. ‘하긴 이전처럼 쇠파이프가 난무하고, 깨진 보도블록이 허공으로 날고, 화염병이 던져지는 그런 시대가 아니니…’ 자조하면서 허락했다.

이전의 엄격하다 못해 괴롭힘이 심했던 내무반 생활도 많이 바뀌어, 선임이 후임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많은 장치가 마련됐고, 심지어 공부할 시간이 주어져 아들은 몇 개의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말년에 민노총 압수수색 때문에 경향신문사에 진입할 때 선두에 섰다.

아들은 대치하던 민노총 관계자들의 행동에 너무 떨렸다고 했다. 그날 무릎 연골을 다친 아들은 회사 근방의 경찰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아, 가끔 점심을 함께 하기도 하는 호사(?)를 누렸다.

증상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일반 병원도 다녔고, 비용 일체가 자비로 처리됐다. 21개월의 의무를 마치고, 일주일 후 남은 공부를 위해 한국을 떠난 그 녀석은 지금도 가끔 무릎이 시리고 아프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난 말했다. “그 봐라 임마, 그냥 해병대 가라니까. 후회 안하냐?”고. 그때마다 피식 웃는다.

그 녀석은 어릴 때부터 항상 원칙을 따졌다. 친구와 게임을 하고 씩씩 거리며 들어오고, 이유를 물어보면 반칙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너희들과는 게임 안 하겠다”고 파장하고 왔고, 농담을 하면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고지식함이 강했다.

그런 녀석이 얼마 전 전화를 했다. “아빠, 창피해 죽겠어요”. 전화 받자 말자 대뜸 던진 한마디였다. “역사 교과서 문제도 그렇고, 지금 정부가 하는 대부분이 여기선 조롱의 대상이 돼요”.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그렇다고 쳐도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어때 그동안 네 생각이 잘못된 것 아니었니?” 하는 은근한 질책이었니, 그 녀석이 얼버무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책무에서 못 벗어나

 

그러나 그 질책도 사실은 아들에게 할 것이 아니었다. 왜 원칙을 따르고,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평민(?)이, 항상 뭔가를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지속되고 있는가의 의문에 쌓이면 결코 그 책무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젠 나보다 더 배움이 많은 그 녀석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은 ‘세상을 똑똑하게 살지 말고 현명하게 살라’이다. ‘대한민국이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고 한다’는 기사나, ‘북한과의 대척점에서 대한민국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민주적 자유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인데, 이젠 그런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있다’는 외국의 칼럼리스트들의 지적을 우리는 즉각적으로 듣기 힘들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돼 있어도 말이다.

애국(愛國)이란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며, 그 마음에서 표출되는 행위이지, 강요된 의무가 아니다. 강요된 의무는 강요된 ‘희생양’일 뿐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과 지인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서 기꺼히 나의 목숨과 시간과 모든 욕심을 내려 놓을 수 있을 때 ‘희생’의 의미가 있다.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라”는 국가지상주의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애국은 없다.

나는 자나 깨나 매일 국민들의 권리와 복지와 행복을 생각하면서 골머리를 쌓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런 자신의 노력도 모르는 국회는 특히 야당은 발목만 잡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빨아 먹는 ‘거머리’ 무리로 보이는 것도 그쪽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도대체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고, 사회가 두 쪽으로 갈려 교민들 사회조차도 우려를 표하거나, 부끄러워 하는 데 그 원인이 모두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법’이 없어서였다면 대한민국은 그동안 어떻게 생존해 왔는지 궁금하다.

 

먼저 설득과 이해를

 

오지랖 넓게도 대통령이 여기저기 개입해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참견하는 그런 행태가 삼권분리의 민주성을 깨부수고, 진실 운운하며 내편과 니편을 갈라놓았다고는 도통 생각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가방끈이 짧은 이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자유무역만이 살 길이라며, 농축산인들에겐 니들은 좀 희생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왜 우리만 희생돼야 하느냐 울부짖으면 서슬 퍼런 법의 칼날을 들이댄다. 그들은 말한다. “한 번만이라도 우리들의 억울함에 귀 기울여 달라”고 말이다. 불쌍한 감정, 미안한 감정이라도 보여 달라고 말이다.

농축산인들은 항상 말한다. “우리는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람들로서 참여하고 있기에, 정책에서 소외시키지 말아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이 해가 다 지나기 전에 희생을 강요하기보다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설득과 이해’의 자세를 보여 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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