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앞두고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강한 자긍심과 역사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통일이 되기도 어렵고 통일이 돼도 우리의 정신은 큰 혼란을 겪게 되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사상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는 기막힌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魂)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일과 11일 제6차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와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그러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최근 젊은이들이 헬조선, 지옥불반도, 흙수저와 같은 냉소적인 신조어로 한국 사회를 지칭하는 것은 잘못된 역사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정부의 모든 교육정책의 초점이 국정화에 맞춰졌다.

 

‘역사전쟁’으로 확대

 

여기에 일부 언론에서는 스리슬쩍 국정화와 그 반대를 ‘역사 전쟁’으로 확대하면서 우와 좌파의 이데올로기 프레임을 짠다. 보수가 아니면 그 반대는 무조건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이념에 휩싸인 부류로 몰아 부친다. 그 무서운 이념주의자가 되지 않으려면 보수에 붙어야 하나? 단지 다양성을 거부하고 획일적 사고를 강제하는 것이 싫어서 반대하는 것 뿐인데도 일부 언론은 무슨 ‘주의자’로 낙인을 찍어 버린다.

 

문과대학 앞 중앙 캠페스로 내려오는 계단 옆 비탈진 잔디밭에서 40~50명의 학생들이 구호를 외친다. 3~4명의 사복경찰에 의해 한 명이 강제로 검은 짚차에 태워지고, 다른 한 명이 “나도 데려가라”고 시동 걸린 짚차로 달려가다 힘에 의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잔비가 끊임없이 교정에 뿌려지고 안개에 휩싸이듯 교정이 뿌옇다. 대학 첫 등교의 모습이었다. 수업을 듣다 보면 ‘독재 타도’를 외치고, 메케한 최류탄 가루가 날리고 어디선가 뛰쳐 나오는 사복경찰들과 학생들이 뒤엉키고 진정되면, 교정의 콘크리트 바닥 어딘가에는 선명한 붉은 피가 뿌려져 있기도 했다. 그때마다 수업은 수시로 중단됐다.

외워지지 않던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면서 애국을 강요받았던 그 시절, 그들의 외침은 불온한 사상에 물든 불순분자들로 보였다. 고교 2학년 역사시간에 잘못된 역사라고 지적하면서 선생과 싸우며 학교를 떠난 친구의 행동만큼 그랬다. 어떻게 어른한테, 어떻게 선생한테 그럴 수 있었던건지…후에 그 친구와 관련된 소문이 돌았다. 검정고시 출신에, 철거촌에 살면서 야학에서 배운 불순이념에 물든…뭐 그런거였다. 근원지는 교무실에서였다.

고교시절에도 뭔가 시대의식을 전달하고자 했던 선생님도 몇 분 계셨다. 그 중 한 분이 한문선생이었는데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 등과 같은 중국 정치·문학가들의 문장을 소개하면서 삶에 대한 자세를 설명하곤 했다. 자신의 죽음으로써 간하여 나라의 안위를 바로 잡으라는 충언이 주된 내용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곧고 올바르게 살라는 뜻이었다.

지금은 대학 진학에 몰두해야 할 때이니, 만약 읽고 싶은 책들이 있다면 메모해 뒀다가 대학 간 후 보라는 그 선생의 충고대로 고전을 읽기 시작하면서, 또 주변에서 읽고 있는 책들과 접촉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세상이 얼마나 작위적이었는지, 만연된 부정과 부패, 부조리에 대항하지 못하게 순응시키려 했는지 아는 순간 생각도 바뀌었다. 그건 ‘충격’이고, ‘분노’였다.

 

‘반공의 논리’ 싸잡아

 

정부에선 시위하는 학생들을 향해 집안이 가난해 불만이 가득찼거나, 공산주의 이념에 물든 소수라고 ‘반공의 논리’로 싸잡아 폄하했고, 일부 사회의 불순세력이나 체제 전복세력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없는 ‘치기어린 행동’이라고 ‘나팔수’들은 끊임없이 떠들었다.

한 번 정부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 정부가 하는 모든 것들에 불신이 쌓인다. ‘음모론’이 확장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거짓말과 왜곡으로 점철된 강요를 거부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강요의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소위 ‘엇나감’ 역시 날카로워진다. 어떤 정부든 비밀이 많고, 부패하면 투명하고, 공개적인 것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강압적으로 왜곡시킨다.

 

내가 왜 불순세력?

 

대학 내에 시위를 주동하던 세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가 사회 개혁과 정당한 사회로의 변혁을 우선시했지, 체제와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 플레임을 짜맞춘 것은 군사정권이요, 언론이다. 고등학교까지 배워왔던 국정교육이 한 인간의 의식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들어가지 않았어도 살아가면서 배우게 되어 있다.

정부에서 지칭하는 ‘의식화 교육’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상이나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다. 편향된 사고에 균형을 갖춘다는 것인데(지금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국정화 배경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 주어진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는 다양한 시각을 습득하는 것이었는데, 누군가 선배라는 이유로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려 했다간 오히려 면박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것이 향후 개혁이니 새바람의 아이콘으로 부각된 「386세대」의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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