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전화통화만 하고, 얼굴 본 지 10여년이 넘은 친구로부터 동창모임 초대를 받았다. 학보사에서 학생기자를 했다가 중앙일간지에서 다시 대기업 홍보부로 이직을 한 친구와의 약속 장소에 갔을 때 대학 시절 함께 어울리던 몇 몇 동창들의 모습도 보였다. 졸업을 하고 몇 년 후 한 번 모임을 가졌을 때 우리들은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시를 읊으면서 변해간 우리들의 모습에 자조한 적이 있었다.

 

부끄럽지 않은가

 

‘4·19가 나던 해 세밑 /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 하얀 입김 뿜으며 / 열띤 토론을 벌였다 /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중략)…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 회비를 만 원씩 걷고 /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 부끄럽지 않은가 / 부끄럽지 않은가 /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그렇게 믿었는데

 

당시 누구는 소설가 등단을 했고, 은행에, 중견기업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취직을 했다. 그날 그들을 만나기 전부터 그들은 전작이 있었던 듯 거나한 얼굴에 분위기는 사뭇 진중(?)했다. 나이 쉰을 넘기면 여유로울만도 한데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서 세상이 생각보다 더 각박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정치의 정(政) 자도 이야기하지 않던 우리들의 대화가 그날은 그렇지 못했다. ‘삼 김(金)세대’라는 동시대에 같은 고민을 하면서, 만나면 서로 지지하던 김(金)씨들이 명멸해 간 상황에서 우리가 다시 논쟁할 일이 없었는지도 모르고, 이데올로기를 끄집어 내면 분위기가 일시에 삭막해지는 것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말야. 이번에야 말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어. 모두가 정직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했거든. 우리가 원했던 도덕성과 윤리성에 문제는 없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들은 2년 전 대선 때를 떠올렸다.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 과정이 미워서 박근혜 후보를 밀었고, 주변 친지들에게 선거 유세장에 초대도 했다. 선거 당일에는 박 후보가 밀리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동료들을 독려하면서 선거 마감을 두고 대거 몰려 박 후보를 찍은 것도 그들이었다.

“그런데 MB의 가증스러운 짓거리 하나 제대로 밝혀내지도 못하고, 수첩 속의 인사마다 겉으로는 멀쩡하고 점잖아 보여도 모두가 지저분하게 살아왔다는 흔적만 봤어. 자신이 사회지도층의 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들이 까놓고 보니 죄다 범죄자잖아. 세월호가 터지니 적폐라고 빠져 나가고, 군에서부터 사회 어느 한 곳도 썩지 않은 곳이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 말은 ‘발본색원하겠다’ 하지만 말처럼 된 것도 없고, 자신은 항상 뒷 전에서 책임이 없다는 식이니까 말이야. 우리가 꿈꾼 나라는 이게 아니었다고”

‘얼마나 속이 터졌으면…’ 돌아오는 내내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잘못한 선택에는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정작 그 말을 내뱉지 못한 것은 정말 ‘내 탓’인가.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의구심이었다.

 

모든게 내탓인가?

 

세월호 참사가, 방산업체의 비리가, 국회의원들의 각종 부정이, ‘퇴직 규정을 쉽게 해야 경제가 산다’는 압박을 받으며 스스로 ‘목숨줄’을 내놓으라는 정부의 강요 앞에선 노동자의 입장이, 대기업 위주의 조세정책으로 구멍난 세수를 메꾸어야 하는 직장인이, 앉아서 생업을 포기해야 할 벼랑 끝에 선 농민이, 모두 내 탓이란 말인가?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의 조롱으로 대한민국의 자긍심 조차 조롱받는 현실이 내 탓이란 말인가?

이게 진정 내가 사랑하며 살아 왔고, 내 아들 딸이 살아가고, 또 그들의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나라란 말인가? 갈등을 부추키고, 책임을 회피하는 이들의 정부가 이젠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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