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無識)의 사전적 의미는 배우지 않은 데다 보고 듣지 못하여 아는 것이 없음을 뜻한다. 그러니 행동 따위가 격에 맞지 않거나 세련되지 않고 우악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살다 보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지식이 풍부한 ‘유식(有識)’한 이보다 무식한 이와 함께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무슨 매력이 있어서 우악스럽고 거친 그런 사람들과 교류하는 걸까?

 

누가 더 무식한건지

 

나보다 학식이나 경험이 없어서 그를 통해 카타르시즘을 느껴서가 아닐까? 그런데 그런 관계들을 찬찬히 지켜보면 무식한 그 사람은 자신이 무식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있어서 말이나 행동이 별로 ‘가식적’이지 않다는 매력이 있다. ‘나를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매력인지 그때 깨달았다. 그런 그들과 이야기하면 나도 모르게 무장 해제되면서 내 속 마음까지 털어 놓는다.

그들과 함께 해 보면 자란 환경이 불우해서 배울 시기를 놓쳤거나, 정부의 교육지원을 받지 못했을 뿐 사전적 의미처럼 그렇게 우악스럽지도 않다는 사실에 놀란다. 오히려 남을 속일줄 모르는 순진하고 직선적인 태도가 배운 이들에겐 불경스럽게 느껴져 그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만 불러 일으킨다.

최소한 그들은 자신이 곤경에 처할 때 내가 믿고 털어놓은 나의 아픔들을 세상으로 내던지면서(상대방을 팔면서) 자신의 위기를 탈출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극심한 불일치를 낳지도 않는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으면서도 최소한의 양심을 속이지도 않는다. 가식이라는 외피를 뒤집어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방끈(?)이 짧다는 이유로 무식으로 매도하는 식자층을 보면 배알이 꼴리고, 그들을 오히려 무식하다고 몰아붙이는 것이다.

‘똑똑하다’는 인지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을 현명(賢明)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지혜롭고 사리에 밝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엔 똑똑한 사람은 많아도 현명한 사람은 적다. ‘현명’은 배움의 시간과 양과는 별 관계가 없다. 그는 세상의 잣대로 배움이 적은 우악스러운 ‘무식쟁이’라 할지라도 ‘주머니 속의 송곳’ 또는 ‘대낮의 호롱불’ 과 같이 반드시 드러나거나, 어려울 때 빛을 발하게 돼 있다.

 

감명은 전염성 강해

 

그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하더라도 듣는 이가 쉽게 알아듣게 말한다. 화려한 미사여구도 쓰지 않는다. 목소리의 톤도 높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는 은은한 봄향기처럼 가슴을 적시고 주변 사람에게 감명을 준다. 그 감명은 전염병과 같아서 옆 사람을 또 그 옆 사람을 감염시킨다. 우리가 그렇게 감염되는 이유는 그의 말이 사리에 어긋나지 않아서 이고, 그 사람의 행동이 말과 틀리지 않아서 이다.

「3·11 전국협동조합장 동시선거」가 막을 내리고 전국에서 조합장 이·취임식이 끝났다. 전국한우협회를 끝으로 몇 몇 생산자단체장의 이·취임식도 끝났다. 신임 조합장이나 협회장은 각자의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2015년의 1분기가 지난 시점에서 마치 새해의 시발점으로 착각하게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조합장들과 협회장의 취임사를 들어 보면 한결같다. 조합의 하인이 되겠다느니, 결속을 다져 한 목소리로 축산업을 한 차원 더 발전시키겠다니 하는 다짐이다. 업무 개시의 일성으로 좋은 말이다. 또 처음 맡게 된 업무에 대한 각오도 더 단단하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누가 먼저 꺼냈는지 모르지만 ‘아프리카의 속담’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누구의 하인이냐’,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접근하면 행동이 달라진다.

선거직의 경우엔 항상 상대방이 있어, 선거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의 봉합이 우선이다. 어느 조합이든 생산자단체이든 그 후유증을 앓는다. 그러나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화합의 참뜻과 왜 화합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무지함을 모르는 것 만큼 무식하고 꼴불견인 일도 없다. 갈등의 원인은 반목에서 시작되지만 그 반목은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또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소통하지 않는 자세가 원인이다.

 

뱉은 말 꼭 실천해야

 

현재 한국 축산업의 상황은 총체적인 위기이다. 어느 하나의 부분만 집중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일선조합은 중앙회와 씨줄날줄로 엮여야 하고, 주변의 다른 생산자단체들과도 연대해야 한다. 단체끼리 티격태격할 일이 아니다. 이전에 누리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고집을 부리면 골탕 먹는 것은 축산농가요, 멍드는 것은 축산업이기 때문이다.

일은 학벌로 하는 것이 아니며, 가지고 있는 재산으로도 아니며, 머리 속에서만 빙빙 도는 지식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작은 것, 양심과 사리분별에 따라 실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축산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선의 조직을 움직여야 할 많은 리더들이 바뀌었다. 알고 있는 것, 그래서 입으로 내뱉은 말을 실천하는 자세야 말로 위기를 극복하는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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