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3·11 전국 협동조합 조합장 동시 선거」 후보 등록이 끝났다. 농협(축협 포함)과 수협, 산림조합 등 전국에서 1326명의 조합장직을 걸고 현재 조합장을 비롯 3521명 후보자들의 ‘자기 알리기’가 본격화됐다.

2.7대1의 평균 경쟁률인 이번 동시 선거는 대전 지역이 3.7대1로 가장 높았지만 5대1의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한 선거구도 적지 않다. 출마자들은 25일 간단한 선거운동 방법을 교육받은 뒤 추첨을 통해 기호를 결정했다.

 

협동조합 사상 처음

 

이번 선거는 우리나라 협동조합 역사상 처음으로 치러지는 ‘동시’선거이다. 협동조합 조합장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비리와 부정을 없애고 깨끗한 선거를 통해 농어촌의 밝은 미래를 열어보자는 의미에서 농협중앙회와 정부 그리고 국회가 ‘위탁선거법’을 제정해 실시하게 된 것이다.

기존의 ‘우리들만의 선거’에서 빚어진 탈·불법이 세상 밖으로 나오자 마치 협동조합은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요, 나쁜 일을 꾸미는 무리들이 모여 있는 복마전(伏魔殿)으로 탈바꿈된 듯 하다. 농어민들이나 협동조합 관계자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하지만 최근의 선거판을 보면 국민들의 눈에는 모두가 그렇게 보인다. 이는 국민들이 색안경을 끼고 본 것이 아니다. 농어민들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다.

금품 수수에 대한 관행으로 조합원 스스로 별다른 죄책감 없이 금품을 받거나,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왔고, 위법행위인 줄 뻔히 알면서도 혈연과 지연으로 맺어진 친분 관계 때문에 신고는 꿈도 꾸지 않는다.

조합장을 하겠다고 나오는 이들은 조합원당 30만원에서 50만원까지 책정해 두고, 조합원들을 찾아다니거나,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제공하면서 뒷주머니에 돈을 찔러주는 일이 일상이 됐다. ‘3당2락(3억을 쓰면 당선되고, 2억을 쓰면 떨어진다는 의미)’이니, ‘5당3락’이라는 말이 나오고, 일부에서는 이번 동시 선거와 관련 「조합장 보궐 동시 선거」날짜도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틀림없이 많은 조합에서 선거 무효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농협 생각하면 눈물”

 

선거와 관련 위법 행위 적발건수 등에 관한 많은 말들이 필요 없다. 농어민에게 ‘순박함’이 없으면 그게 무슨 농어민인가. 현 세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에게 농어민에 대한 애정이 있다. 도시에서 삶을 사는 도시민들조차 뿌리를 따지면 농촌, 농부의 자식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으랴. 농촌을 생각하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뭉클해 오고, 사라져 가는 옛 농촌의 풍경을 그리워한다. ‘고향의 맛과 멋’이라는 문구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중반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선진국들의 1인당 국민소득이 3.4~4%씩 성장했을 때 우리는 어림잡아 연간 6~7% 씩 증대하는 성장을 기록했다. 경제학적으로 1~1.5%의 성장을 ‘혁명’, 3.5%를 ‘황금기’라고 부른다면 6~7%는 ‘기적’이다. 그래서 외국의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성장을 가리켜 「한강의 기적」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면서 세계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게 된 것은 농업의 희생이 발판이 됐다. 그렇게 소외된 농민들을 끌어 안고, 척박한 토양을 일궈나가며 외부로부터의 도전에 대응하면서 한국 농업을 육성 발전시킨 것이 협동조합의 역할이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회한 농협의 관계자는 ‘농협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도 했다. 그에게 지금 협동조합 내에서 일어나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소감을 물어본다면 분명히 ‘피눈물’로 표현했을 것이다.

탈·불법에 더해 각종 음해와 폭로 등 흑색선전은 조합장 선거를 완전히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갔다. 내부 고발이랍시고 1년도 더 지난 일들을 언론에 제보하고, 금감원에 투서하고, 여자 문제가 문란하다느니, 심지어는 자신이 조합장이 되겠다는 그 조합이 복마전이었다고 음해한다. 이 같은 행위는 금품 수수와 또 다른 의미에서 더 심각하다. ‘내부 고발’은 투명한 경영을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보호되어야 하지만 선거 때의 행위는 다분히 목적이 있어 보인다.

 

전체가 불신의 늪에

 

이는 상대 후보만 다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조합이 다치고, 나아가서는 건전한 많은 조합이 신뢰를 잃게 되고 협동조합 전체가 불신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가뜩이나 잊을만 하면 터지는 사건 사고들로 협동조합에 대한 신뢰가 희석되면서 더 이상 소비자들은 ‘우리의 것’, ‘고향의 맛’에 무조건 충성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더 깨끗하고 공정하게 치러져야 한다. 농협중앙회가 부정선거 발생조합에는 표창, 시상이나 자금 지원을 즉각 중단하고, 후보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조합원은 자격을 박탈하겠다면서 강력 제재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회의원들에게 속으면서 책임은 그들을 뽑아준 우리들이기에 속 터질 울분을 가지고 4년을 산다. 당신들만 깨끗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 행사한 한 표가 내 재산을, 우리 농촌을, 그리고 한국농업을 망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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