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일부터 31일까지의 일정으로 호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AFC 아시안컵의 한국 축구를 둘러싼 주변의 반응과 평을 지켜보면 어쩜 그리도 대한민국의 현주소와 닮았을까 싶다. 여론을 주도한다는 언론의 전형적인 냄비근성이랄지, 아님 과정을 중요시 하지 않고 결과만 놓고 따지는 근시안적 사고 방식이라면 너무 혹평인가?

홍명보 감독의 갑작스런 사퇴로 등장한 울리 슈틸리케(Uli Stielike) 감독은 직무를 수행한지 아직 6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아시안 컵에서 아시아 맹주의 자리를 찾아오라는 강요와 기대는 어찌 보면 ‘어거지’이다.

 

안된다는 생각 앞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선에서 오만·쿠웨이트 그리고 우승 후보의 한 축인 호주를 모두 1-0으로 꺾었다. ‘1-0’의 스코어는 축구 경기에서 가장 아슬아슬한 경기이다. 손쉽게 이길 수도 있는 나라들과 힘겹게 싸운 것 자체를 슈틸리케 감독의 전략 미숙이라고 꼬집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 전력으로는 호주에게 이기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지만 결론은 이겼다. 그것도 이청용·구자철 등 몇 명의 정예 맴버들이 빠진 상황에서였다.

슈틸리케 감독의 구상은 ‘23명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모두 선발과 후보 구별 없이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행인지 아니면 다행인지 호주 아시안컵에서 그렇게 됐다. 아슬아슬하지만 조금씩 한 경기 한 경기를 이겨내며 부상의 터널을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23명 모두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 된 선수단을 꾸리는 것은 모든 감독의 꿈’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꿈일 뿐이라며 국내 전문가들은 일찍 포기해 왔다.

꿈은 현실화 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희망이요, 목표요, 삶의 지향점이 되지만 노력을 하지 않으면 망상일 뿐이다. 국내 지도자들은 미리 가지 못할 목표라고 정했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현실화하지 못했다. 주변에서 그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거나, 그가 객관적인 사고 방식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월드컵 하면 우리는 우리에게 자신감을 일깨워 주고 북돋아 준 2002년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히딩크 감독에게, 선수들에게 감사해 한다. 우리조차 믿지 못했던 ‘월드컵 4강’이었다. 그 뜻밖의 선물은 우리를 당황케 했다. 홈그라운드의 이점 때문이라고 스스로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과를 가져다 준 것은 히딩크와 선수들의 꿈을 현실화하려는 노력이었다. 우리 스스로 믿지 못했을 때 히딩크 감독은 ‘꿈은 실현된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고, 그 때문에 주변의 험담도 이겨냈던 것이다.

‘히딩크의 사고방식’, ‘꿈은 이뤄진다’는 그 교훈을 우리는 또 잊고 있다. 언론이 먼저 전문가들을 내세워 참견하고, 대중들을 핑계로 큰 줄기를 흔들어 댄다. 약간의 성공을 과대포장하고, 실수를 실패라고 뭇매질을 해댄다.

슈틸리케 감독 선임에 대해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그의 한국 축구에 대한 열정과 헌신적인 부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축구의 미래상을 정립해 달라는 뜻으로 그를 영입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슈틸리케 감독의 책임과 임무는 뻔하다. 아시안컵의 우승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의 결과물일 뿐이다.

 

우두머리가 소극적

 

히딩크 이전의 한국 축구는 학벌과 파벌로 얼룩져 있었다. 히딩크가 아니면 박지성도, 이운재도, 김남일도, 이을용도 없었을지 모른다. 특정 학교 출신으로 구성된 선수들은 신화를 창조할 수 없었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월드컵에 나서면 항상 그 지겨운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고, 감독부터 주눅이 들어 제대로 된 전략도 짜지 못해 ‘1승1무1패’를 교과서처럼 머리에 새긴다. 우두머리가 소극적이니 그 밑의 선수들이 창조적일리 없다. 볼 점유율을 따지지만 뒤로 돌리는 패스로 우물쭈물 시간만 끌다가 급습당하는 모습을 우린 수없이 봐왔다. ‘뻥 축구’로 어쩌다 상대방의 골대 앞에 서면 골대와 상관없는 곳으로 차 날려버리는 어이없음도 우린 겪었다.

 

목표 모두가 공유를

 

국가대표 선수 23명을 선발하고 한 번 후보는 선발 선수의 발목이 부러지지 않는 한 그대로 벤치를 지켰다. 국가대표는 운동선수의 로망이다. 그리고 웬만큼의 실력 없이는 그 자리에 끼지도 못한다. 그렇게 선발한 선수들의 실력을 죽이는 것은 낭비이다. 실력의 상향 평준화는 기회를 주지 않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기회를 주려면 일단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수가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비단 축구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실력 정도를 파악하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팀을 강화시키는 일이고, 조직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왜 꼭 그러한 일들이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서야 가능해지느냐는 우리가 지금 한 번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경기가 아니다. 감독은 선수들의 외부적 요인을 배제하고 오직 능력에 맞는 자리에 배치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나 조직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기꺼이 희생할 줄 아는 희생정신이 샘솟는다. 국민들이 사이에서 “FTA 시대니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도 외국에서 수입하자”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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